[역경의 열매] 장순흥 (13) 내 이름 딴 ‘장스 밸브’ 설치로 원전 기술 자립 성공

장순흥(왼쪽 세 번째) 한동대 총장이 1999년 오스트리아 빈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에서 열린 국제원자력안전자문단(INSAG) 회의에서 전문위원으로 참석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82년 미국 벡텔사에서 근무할 때 웨스팅하우스의 ‘쓰리 루프’(3-loop)형 원자력 발전소를 경험했다. 반면 한국의 원전기술 자립 대상 사업은 미국 CE사의 시스템80이었다. 1300MW급 원전을 1000MW로 줄여 한국에 가져오기로 했다. 원전 시공을 하려면 반드시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라는 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사고 전개 시나리오를 분석해서 위험도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안전성 평가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원자력 발전소의 중대 사고를 줄일 수 있을까. 만일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시스템80 원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원전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지만, 원자로 계통의 압력을 낮추는 안전감압장치가 없다는 결정적 문제를 발견했다.

안전감압장치는 원자로와 냉각계통의 압력을 낮춰 과압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냉각수가 원활하게 투입되도록 돕는 장치였다.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원전설계 수업을 하면서도 시스템80 원전을 놓고 토론 수업을 하는 데도 이 문제가 가장 큰 결점으로 나타났다.

“교수님, 시스템80에서 안전감압장치가 없으면 원자로 냉각계통이 고압 상태가 됩니다. 그러면 원자로 용기에 균열이 생겨 노심용융물이 격납건물 내로 분사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격납건물의 온도와 압력이 급격하게 상승해 건물 손상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시스템80의 문제를 잘 봤습니다.”

문제는 CE사와 한전을 설득하는 게 힘들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원전을 설치할 때도 안전감압장치를 설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하지 않는 장치를 유독 한국에서 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안전을 위해 무조건 해야 합니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물러설 수 없었다. 안전은 원자력 발전의 최우선 가치였다. 원자력연구원과 CE 관계자를 만나 설득하고 토론회도 열었다.

“저는 미국 MIT에서 액체금속로의 안전성 평가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에는 나와 같은 원자력 전문가가 많습니다. 한국의 원자력 기술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습니다. 내가 보기엔 영광 3,4호기(현 한빛 3,4호기) 설계는 당신들의 실력과 대등하다고 봅니다.”

나는 학계와 당시 동력자원부에 문제 제기를 계속했다. 결국 발전소 완공 2년을 앞두고 CE사에서 답변이 왔다. “프로페서 장, 당신의 뜻대로 설계를 변경하겠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95년쯤 영광 3,4호기가 완공됐고 원자력 발전소 기술 자립을 이뤘다. 한전에선 “우리가 참조했던 시스템80보다 중대 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10분의 1로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홍보했다. 지금도 그 장치는 내 이름을 따서 ‘장스 밸브’(Chang’s valve)라고 부르고 있다.

학회에 이런 사실이 알려지고 한국 원자력 산업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나는 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국제원자력안전자문단(INSAG, International Nuclear Safety Advisory Group) 위원으로 위촉됐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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