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피난처 있으니’ 70장(통7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욥기 1장 6∼12절
말씀 : 일반적으로 선과 악은 항상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싸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도 선과 악의 이원론적 대립을 극대화해서 마침내 선이 악을 물리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래야 또 우리 마음이 편합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의 구도는 개인은 물론 공동체까지 큰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그래서 나와 뜻이 맞지 않거나, 우리의 이익을 해치려 하면 모두 악으로 간주하고, 분연히 일어나서 ‘정의의 사도’가 되어 악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나 또는 우리가 설정해 놓은 악은 제거의 대상이지 공존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런 우리 생각의 틀을 깨뜨립니다. 최고의 선인 하나님과 최고의 악인 사탄이 만납니다. 그리고 심지어 서로 대화를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둘은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부리십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부리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대등하게 대립하는 사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잠시 필요해서 쓰시는 것뿐입니다. 욥기에서는 욥을 연단시키고 단련시키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몸을 제외한 소유물을 사탄에게 맡기신다고 하십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욥을 시험합니다. 그의 생명은 절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꼼짝하지 못하는 사탄을 보게 됩니다. 욥기에 나타난 구도는 우리에게 익숙한 선악 이원론적인 구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의 일원론적인 구도입니다.
이런 구도를 가지고 세상을 보면 나와 뜻이 맞지 않고 우리의 이익을 해치는 대상을 소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무찔러 없애야 하는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잠시 맡겨두신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고 그 사탄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쥐락펴락하십니다. 결국 세상 끝 날에 사탄은 무저갱이라는 곳에 던져지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봐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속지 말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고 속이 상해서 괴롭고 힘들 것입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상한 마음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평생에 몇 번씩 반복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라서 경황이 없었겠지만 이젠 알게 되었으니까 다음에는 마음이 안정될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집어넣기도 하시고 다시 건지시기도 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우리의 성품을 다듬어 나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 42:2)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무능한 나를 발견하며 그 앞에서 겸손으로 행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광석 목사(기쁨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