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16) 입학사정관 전형 고안해 한국의 교육환경 바꿔놔

장순흥(가운데) 한동대 총장이 2007년 4월 카이스트 교학부총장 시절 입시제도 개선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장 총장 왼편은 이광형 당시 교무처장으로 현재 카이스트 총장을 맡고 있다.


2005년부터 나는 카이스트 교학부총장으로 로버트 러플린, 서남표 총장이 강조하던 대학 입시 개혁을 총괄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같은 천편일률적인 입시 제도에선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다양한 학교 활동과 인성, 수행 과제 등을 평가하는 학교생활기록부를 살펴보는 입학사정관 전형을 고안해 2007년부터 카이스트에서 시행했다. 이것이 오늘날 수시 입시제도의 뿌리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은 대학입시의 절대적인 지표인 수능에만 목숨을 걸었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 오후 6시가 되어도 집에 못 가고 야간 자율학습에 학원까지 다녔다. 학생은 학생대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과도한 주입식 교육에 힘들어했다.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과도한 사교육비를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학원을 통해 시험 점수를 받는 현실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카이스트가 앞장서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한다면 파급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입학사정관제를 과학고부터 적용했다. 전국의 과학고 교장을 초청해 일찍 마치는 학교, 자기 주도 학습을 강조했다. 운동 독서 인성 체력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학교생활기록부, 수능시험, 대학별 고사라는 성적 중심의 획일적 학생 선발 체계를 과감히 탈피했다. 카이스트의 인재상인 창의력,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서류 평가와 심층 면접을 했다. 심층 면접은 과학기술 글로벌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개인 면접과 토론, 토의 면접을 했다. 타인과 원활한 소통 능력, 논리 전개 능력, 창의적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 확인했다. 첫 입학사정관 전형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2008년부터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과학고에 시범 운영하던 입학사정관 제도를 전국 일반고에 확대 적용하자고 했다. 그래서 카이스트에서 일반고 학생 200명을 선발했다. 이것이 오늘날 수시 제도의 근간이 됐다.

대학입시 개혁의 핵심은 대학·대학원 교육이 아닌 입시 교육에만 과도하게 집중된 한국의 교육환경을 바로잡는 데 있다. 중등교육 과정의 피로도를 과감히 줄이고,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 주도 학습능력을 고등교육 과정에서도 꾸준히 학습을 이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며 개혁을 이끈 결과 카이스트는 교육 예산 캠퍼스 확장 등에서 괄목한 성장을 이루었다.

최근 입시 비리 사태 때문에 ‘과정 중심’ 평가인 수시 제도를 줄이고 이전처럼 ‘결과 중심’ 평가인 정시를 확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수능과 정시 비중이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소위 교육 특구라 불리는 서울 강남, 목동 8학군 등지로 학원 수요가 다시 몰리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게 될 것이다.

반면 수시 제도와 입학사정관제가 활성화되면 사교육 기관이 몰린 교육 특구 지역 수요가 감소한다. 지방과 수도권의 고등교육과 지역균형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문제는 국가 균형발전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제도가 악용될 수도 있다. 문제점은 수정·보완해가며 정시와 수시라는 양대 축으로 입시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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