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순흥 (17) UAE 원전 수주… 위축된 연구개발 분위기 살아나

장순흥(오른쪽) 한동대 총장이 2010년 5월 카이스트 교학부총장 시절 한국형 원전수출에 기여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자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뒤 악수하고 있다.


2007~2008년 카이스트 부총장직을 수행하며 테뉴어 제도, 입학사정관 제도와 같은 과감한 개혁을 했다. 많은 분이 학교에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류근철 박사님과 김병호 박병준 회장님이 각각 578억원, 300억원을 쾌척하고 KI 건물을 기부해주셨다.

이후 온라인 전기차, 모바일 하버 같은 굵직한 정부 프로젝트를 따내며 카이스트의 전성기를 이뤘다. 2009년은 특히 나에게 의의가 컸던 해다. 직전 해에 금융위기가 터졌고 그 여파로 연구개발(R&D)이 상당히 위축되는 분위기였다.

서남표 총장님의 호출이 왔다. “장 교수, 이럴 때일수록 과학기술 R&D를 더 활성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청와대와 관계자를 접촉해 뜻을 전해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뭐를 더 해야 하나’하는 고민을 안고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를 많이 찾아다녔다. 그때 만났던 분들이 한결같이 “원자력 산업에서 뭔가를 해내면 좋겠다”고 의견을 던졌다. 당시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이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그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사업의 입찰평가(Bid evaluation)가 있었다. ‘아, 이거다.’ 그렇게 원자력 사업이 정말 전광석화같이 진행됐다.

당시 UAE 원전 사업을 알아보니 입찰 평가가 2009년 안에 다 끝나기로 돼 있었다. 그래서 윤 실장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가 수주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정부에서 강력히 도와주십시오.” 사실 UAE 원전 수출 때 이명박 대통령이 많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대표단 구성 및 실질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준 사람은 윤 정책실장이었다.

나는 대표단의 교육담당으로 참여했다. 기본적인 임무는 UAE의 원자력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론 APR1400의 안전성에 대한 설득이었다. 그 일을 내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우선 대표단 중에 원자력 안전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특히 2002년 표준설계인가 때 나는 안전 전문위원장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APR1400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에 원자력 안전에 관련해 UAE의 지도층에게 직접 안전 문제를 설득했다.

UAE 측에서 송곳 같은 질문을 던졌다. “APR1400이 한국 표준설계인가만 받은 거 아닙니까.” “미국 설계인증도 얼마든지 받을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APR1400’이 미국 인증을 받은 ‘System 80플러스’보다 개선된 기술이 훨씬 더 많습니다.”

UAE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의 원전 기술이 다른 국가보다 가격은 싸지만, 안전성은 떨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경쟁사에서 “한국 원전은 가격만 싸지 안전하지 않다”고 계속 공격해왔다. 그래서 단순하게 ‘설계 인증받은 System80 플러스보다 더 개선됐다’ ‘한국에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 4호기가 곧 가동한다’ ‘APR1400의 거대 실험 장치인 아틀라스는 이미 가동되고 있다’는 세 가지 논리로 파고들었다. 지금도 2009년 12월을 잊을 수 없다. “원전 수주를 한국과 하겠습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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