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70장(통45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30~31절
말씀 : ‘판도라 상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는 감추고 싶은 비밀이나 알면 위험해지는 일에 대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러니 판도라 상자를 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의미의 진정한 뜻은 그 유래를 찾아보면 다릅니다. 오히려 판도라 상자를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도라 상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에서 유래됐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해 봅니다. 판도라라고 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절대 열지 말라고 하는 상자를 열게 됩니다. 그때 상자 안에서 불행 고통 질병 질투 등의 재앙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깜짝 놀란 판도라는 급히 뚜껑을 닫았습니다. 이때 마지막 바닥에 있던 희망은 상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남아 있게 됩니다. 재앙으로 시작됐지만 그 끝은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판도라 상자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죽음입니다. 죽음은 금기로 여겨지는 판도라처럼 언급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끝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죽음은 단순히 부정적이며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실로 이 죽음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감추면 감출수록 평안하지 않습니다.
이 죽음의 실존적인 판도라 상자를 과감히 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약의 서신서 대부분을 기록한 사도 바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죽음에 대한 금기를 과감하게 열어젖히셨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것은 단순한 의지나 성향이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상자에 담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상자를 열면 무엇이 보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왜 예수를 믿는 것이 위대한 선택이요 위대한 은혜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십자가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마주하셨습니다.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회피하고 싶으셨던 적도 있었습니다. 죽음은 그만큼 인간에게는 넘어야 할 가장 큰 두려움의 난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 죽음을 회피하셨다면 우리는 아마도 죽음 앞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게 됐을 것입니다.
절망과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를 붙들게 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제대로 된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말에도 ‘죽기를 각오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십자가 소망을 붙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진정한 삶의 회복과 생명이 있습니다.
기도 : 주님, 우리를 두렵게 하는 죽음과도 같은 절망이 밀려올 때 소망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옵소서. 특별히 고난의 끝자락에 있는 주의 자녀들을 붙잡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혁 목사(변두리교회)
약력=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장신대 신학대학원(MDiv), 에스라 성경대학원(T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