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종생 (11)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현장서 한국교회 하나로 뭉쳐

한국교회 성도들이 2007년 12월 서해안 기름유출 현장에서 기름띠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예인선이 충돌해 원유가 유출되는 사고가 났다. 유조선 탱크에 있던 1만2547㎘(7만8918배럴)의 원유가 태안 인근 해역에 유출돼 태안군과 서산시 양식장, 어장 등 8,000여㏊가 원유에 오염됐다. 온갖 어패류가 폐사했고 짙은 기름띠는 만리포 천리포 모항 천수만 안면도는 물론 전라도까지 퍼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재난이었다.

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로서 현장에 달려가야 했다. 우리는 만리포교회에 현장상황실을 만들었다. 당시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현지에 도착한 기독교계 단체는 10여개에 달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캠프를 차리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독교는 물론이고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방제 작업에 참여했다. 현장에 나와 있는 실무자들은 교계가 벌이는 활동이 각개약진 형태를 띠고 있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그해 5월 샘물교회 단기선교팀의 아프간 피랍사태를 겪으면서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자랑스럽게 여기던 해외 선교 활동이 하루아침에 비난의 대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교계 중진들(조용기·김장환·김삼환·손인웅·오정현·권오성·최희범·조성기 목사 등)이 두 차례 모여 숙의한 끝에 이번 방제 작업만큼은 한국교회가 하나가 돼 뛰어들자는 합의가 나왔다. 이렇게 서울에서는 ‘연합 봉사’라는 방침이 정해졌고, 현장에서도 ‘봉사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개별적으로 진행해 온 개신교의 기름띠 제거 자원봉사 사역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름띠 제거를 위해 2007년 12월 18일은 ‘한국교회 자원봉사의 날’로 정해졌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개목항에는 한국교회 지도자 700여명이 모여 자원봉사단 발대식을 했다. 이듬해 1월 11일 연세대 강당에서는 ‘서해안 살리기 한국교회봉사단’이 출범했다.

원유 유출 사고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하나 됨의 당위’라는 과제를 한국교회에 던져 주었다. 도회지의 대형교회부터 농어촌의 작은 교회, 도시의 개척교회까지 사회정의와 하나님의 선교를 실천하기 위해 서해안으로 달려와 방제 작업에 전념했다.

환경 선교 혹은 생태 정의에 대한 입장과 견해가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바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그리고 회심의 기도를 드리면서 기름띠를 걷어 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기름을 닦으시던 어느 권사님의 고백처럼 “바다가 죽으니 사람도 살 수 없네요”를 모두가 몸으로 경험했다. 바다와 육지, 도시와 농촌, 교회와 사회를 별개로 생각하며 환경과 관계없이 전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바다라는 환경과 우리가 소중히 여겨온 전도가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현장에서 깨닫게 된 것이다.

적어도 기름유출 현장에서만큼은 한국교회가 서로의 입장과 관점을 내세우지 않았다. 교회는 가장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켰다. 이런 과정을 통해 3·1운동 이후 가장 칭송받는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역사가 만들어지게 됐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