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의식 (3) 금고 손대려다 아버지께 들켜 “커서 뭐가 되려고…”

김의식(뒷줄 오른쪽 두 번째) 목사의 아버지가 1998년 전남 나주 영산포중앙교회에서 원로장로로 추대될 당시 찍은 가족사진.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외로움 속에 살고 있을 때 나를 붙잡아 주신 분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고 방구석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마다 다가와 “의식아, 엄마가 네가 미워서 그랬겠냐? 다 너 잘되라고 하신 거야!”하면서 위로해 주셨다. 아버지의 사랑은 당시 나를 붙들어 주는 가장 큰 힘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버지에게 큰 실망을 안겨 드리는 일이 터졌다. 아버지가 약방에서 손님을 대하고 계실 때 그 뒤편 금고에서 돈을 훔치려고 한 적이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신 아버지가 돌아보시는 바람에 그만 들키고 말았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갑자기 얼음이 되어서 금고에서 손을 슬며시 뺐다. 손님이 가신 후 아버지는 나를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셨다. 나는 그날 죽는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오히려 눈물을 글썽이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의식아, 벌써부터 도둑질을 하면 커서 무엇이 되겠냐….” 나는 지금도 그날 저녁 아버지가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은 2남 3녀 자녀들에게 무언의 신앙교육을 하셨다. 자녀들이 모이면 아버지는 늘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또 예배에는 절대 빠지지 말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신앙의 모범을 통해 우리 자녀들에게 남기신 가훈은 첫째 하나님 중심, 둘째 성경 중심, 셋째 교회 중심이었다. 자녀들에게 물질은 남겨 주시지 않았지만 우리 남매들을 오늘날 목사 장로 권사가 되게 만들었던 가장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셨다.

아버지는 장로 은퇴 후 고향 교회의 원로장로로 계시다가 2001년, 50여년을 경영하던 영생당약방을 정리하고 나를 따라 서울로 오셨다. 그런데 당시 교회가 극심한 불화와 분쟁 가운데 있었다. 어떤 장로는 나를 회유하기 위해 아버지를 불러 위협과 압박을 가하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우리 아들은 아버지 말씀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잘 듣는다”라고 말씀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과 10년 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다.

2011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한번은 새벽기도회를 모시고 가는데 갑자기 나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내가 평생 교회와 노회, 총회를 겪어봤지만 이렇게 힘든 교회는 처음인데 김 목사가 잘 이겨내서 너무도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아버지 말씀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아버지께 불효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

부모님은 고향의 영산포중앙교회를 세 번 건축하시면서 건축비 70%를 감당하실 정도로 평생을 주님과 교인, 이웃을 위해 바치고 나누고 베풀며 사시다 가셨다. 그리고 마지막 시신까지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기증하셨다. 부모님이 우리 남매들에게 남기신 신앙 유산은 베드로전서 4장 7~11절 말씀이다. 평생을 이 말씀대로 사시다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말씀을 읽고 전할 때마다 그리운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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