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퓨전 사극 드라마가 열풍을 일으켰다. 정조와 의빈 성덕임의 역사적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 드라마는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감성적 대사로 인기를 끌었다. 성덕임은 궁녀임에도 정조의 사랑을 두 번이나 거절한다. 정조는 얼마든지 성덕임을 강제로 취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조는 인문주의자였고 문예 부흥을 일으켰던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성덕임을 압박하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성덕임은 정조에게서 자꾸 멀어지려 한다. 심지어는 궁녀로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왕 앞에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는 이 시대의 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투사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정조와 성덕임은 엎치락뒤치락 사랑 게임을 하며 고도의 심리전을 한다. 당기면 멀어지고 밀어내면 가까워지듯이. 두 사람의 아슬아슬하고 애절한 사랑이 절정에 달할 즈음, 국민가수 이선희가 부른 OST ‘그대 손 놓아요’가 흘러나온다. “…고이 안아주던 그대 품속에서/ 터져오는 눈물을 꾹 참죠/ 내 세상을 온통 물들여버린/ 그대 손 놓아요….” 성덕임이 정조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손을 놓겠다는 노래인데,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손을 붙잡아 달라는 역설적 호소요 반어적 절규였다.
나는 드라마 후반부 정조가 성덕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날 연모하지 않는다 해도 너는 내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없는 곳에서 홀로 울지 마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지도 마라.” 나는 설교 자료로 쓰기 위해 드라마와 아가서를 연결하면서 시청했다. 그래서 이 대사는 마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곧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말씀으로 들렸다.
얼마 전 이어령 교수는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이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학자에게 묻지 말고 20~30대 젊은이들의 얼굴을 보라”고 했다.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방향이 그들의 얼굴에 이미 다 쓰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는 들녘의 보리처럼 발길에 짓밟힌 마이너리티들이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삶의 처절한 애환과 절규를 알기 때문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배부르고 고생을 모르는 사람들은 역사를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젊은이들의 얼굴 속에 한국교회의 미래를 보고 있는가. 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그러기 위해선 우리부터 함께 손을 잡아야 한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예배 지킴과 회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생각과 방법이 다르다고 비난과 공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비난과 공격을 “그대 손 놓아요”가 아니라 오히려 “손을 잡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해석했다. 한국교회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 일해 본 사람, 교회 존립을 위협하는 악법들을 저지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워본 사람이라면 연합기관이 하나 돼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서는 생각과 방법까지도 초월하게 될 것이다.
필리핀에서 30년 넘게 선교했던 내 친구 임종웅 선교사는 이런 말로 나를 격려해 준 적이 있다. “지금 소 목사가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공적인 연합 사역을 하려는 것은 해외 선교사를 수천 명 보내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이다. 한국교회가 분열하고 싸우다가 모(母) 교회가 무너지면 선교 현장도 다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일을 위해 한국교회 모든 지도자와 성도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우리가 생각이 다르다고 정말 손을 놓아야 하겠는가. 이럴수록 더 손을 잡아야 한다. 손잡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