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건숙 (7) 새벽엔 작품 구상, 모두 잠든 후엔 번개 같은 집필

소설가 이건숙(뒷줄 왼쪽) 사모가 2006년 남편 신성종 목사 및 충현교회 장로였던 김영삼 대통령 내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제 있는 교회만 맡아서 목회하는 남편 신성종 목사는 언제나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스페어타이어야. 문제 있는 교회를 맡아서 해결하면 떠나서 또 다른 문제 있는 교회로 옮겨야 해.”

어떤 때는 견딜 수 없이 너무 힘들어서 나도 따지고 든다.

“그러면 어쩌자고 식구들 다 고생시키면서 40세까지 미국에서 그렇게 힘든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목회하면서 그렇게 받은 박사학위를 버리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그는 고도의 지성으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분석하는 훈련을 받았다. 언어 분석을 전공해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의중까지 찍어내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교수가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미국의 종합대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느라 무척 고생했다.

40세까지 오로지 공부만 해서 학위를 받고 정교수로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신 목사는 어느 날 갑자기 교수직을 내던지고 목회로 뛰어들었다.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라고 본인이 고백하니 불평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남편이 그 다양한 지식을 펴보지 못하고 사장되었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에 속한다.

남편의 평탄치 못한 목회, 주렁주렁 매달리는 시댁 식구들, 게다가 아픈 아들까지 데리고 글을 쓰는 일은 불가능했다. 낮에 차분히 시간을 확보해 집필한 경우가 드물다. 100편이 넘는 단편들 대부분 새벽기도 끝나고 교인들이 다 흩어진 뒤에 혼자 남아 기도하며 치밀하게 작품 구성을 하며 시작했다. 작은 공책에 꼼꼼하게 구상을 해서 메모를 하고는 식구들이 모두 잠든 뒤 밤 11시부터가 내 시간이다. 자정을 넘어 대개 1~2시까지 자판을 두드렸다. 만약 등단 당시처럼 원고지에 썼다면 감당 못 했을 터이다. 잠을 줄이면서 쓰는 황금 같은 시간이니 온전히 집중해 빠져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구상을 치밀하게 하고 번개처럼 집필하는 버릇이 있다.

다행히 남편은 종달새라 저녁잠이 많다. 내가 글 쓰는 걸 보지 못해 언제 그 많은 글을 써냈는지 모른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나는 올빼미라 밤중에 깨어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너 시간 자는 잠은 아주 깊이 잤다. 그러니 새벽기도도 나가고 글도 쓸 수 있었다. 이런 수면 습관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몸에 익은 것이라 지금도 버리지를 못한다.

하나님은 10년간 고된 문학 훈련을 시킨 뒤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재할 기회를 주면서 밀고 가셨다. 국민일보에 대하소설 ‘바람 바람 새바람’, 기독신보에 장편 ‘이브의 깃발’, 월간 창조문예에는 4편의 장편 ‘빈 배를 타고 하늘까지’ ‘나는 살고 싶다’ ‘남은 사람들’ ‘멀고도 험한 좁은 길’을 연재했다. 월간 새가정엔 장편 ‘장대 위에 달린 여자’를 연재했다. ‘멀고도 험한 좁은 길’은 나중에 ‘예주의 성 이야기’로, ‘장대 위에 달린 여자’는 ‘사람의 딸’로 보완 수정 출판됐다.

쫓기는 시간에 하나님은 이렇게 연재를 시키면서 글을 쓰도록 하셨다. 계속 써야 하니 멈출 수 없도록 하나님은 강하게 장치를 해놓고 나를 쓰신 것이다. 연재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걸 다 쓸 수 있었겠는가.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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