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좋아해 종종 사극을 보곤 합니다. 고증 없는 퓨전 사극엔 관심이 없습니다. 몇 해 전 ‘성균관 스캔들’이란 드라마가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 역시 남자만 입학할 수 있었던 성균관에 남장한 여성이 입학한 것으로 설정해 남녀의 애정을 다뤘기에 현실성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던 중 기가 막힌 장면이 있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학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부족한 학생은 탈락하고 마지막에 최종 두 명만 남게 합니다. 이들에게는 임금이 직접 문제를 내고 장원에게는 임금이 직접 상을 내리는데 그 상이란 게 요즘 흔한 귤이었습니다. 당시 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해줍니다.
시험이 진행되고 드디어 마지막 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임금이 직접 낸 문제가 공개됐는데 ‘조선의 사대부가 백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무엇인지 한 글자로 답하라’였습니다. 고심하던 두 유생이 답을 냈습니다.
첫 유생의 답은 ‘친할 친’(親)이었습니다. 사대부는 백성과 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최고의 신분 계층인 사대부가 백성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친해지는 것이라는 대답은 얼마나 파격적입니까. 이게 이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백성이 사대부 옆에 올라가 앉을 수는 없는 일이니 사대부가 자신을 낮춰 백성 옆에 내려가는 것뿐입니다. 자신을 낮춘다는 건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워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 곁에 앉으신 성육신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저는 이 답이 장원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장원은 다른 유생의 몫이었습니다. 그의 답이 궁금하시지요. 바로 ‘새 신’(新)이었습니다. 사대부가 백성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친해지는 것을 넘어 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이라는 답이었습니다. 백성 곁에서 먹고 마시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백성이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한다면 사대부는 백성을 변화시켜 새롭게 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습니다. 임금은 이 유생을 장원으로 뽑았습니다.
두 유생의 답을 오늘에 적용하면 어떨까요. “친하게 지내자. 나눠 줄 테니 함께 살자”는 것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될 것입니다. 표를 얻기엔 좋겠지만 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정말로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백성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변화를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니 지도자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더라도 고통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 곁에서 먹고 마시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기만 했다면 인기가 최고였겠지만 백성을 책망하고 죄에서 돌이켜 새롭게 되라고 하셨기에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친하겠다, 다 해 주겠다고 말하는 후보는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고통을 말하는 후보는 나라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전쟁 중 영국의 처칠 총리는 달콤한 사탕을 제시하는 대신 땀과 눈물과 피를 요구했습니다.
돌 맞을 각오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정직한 메시지를 낼 수 있는 사람, 먼저 그 고통을 짊어지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한 표를 찍기 전 깊이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