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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성도와 교회



오늘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다. 지난 몇 개월간 대선 후보들과 각 정당, 그리고 열성적 지지자들은 날 선 말을 주고받고, 서로를 깎아내리는 데 온 힘을 다해 왔다. 세상 정치의 생리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렇게 선거 때마다 온 나라가 분열되고 가까운 사람까지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간에 차기 정부와 여당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을 감싸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 또한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나라가 다시 한마음이 되어 산재해 있는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성도와 교회가 그러한 화평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된다. 마치 누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하고, 누가 당선되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말하는 언사는 적어도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핏대를 세우는 모습이 성도의 모습일 수 없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세상의 모든 경영을 이끄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은 마치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져 역사를 형성해 간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역사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하는 것도 대부분 그러한 책임의식에서 나온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책임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계획과 도모가 가진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기초다. 하나님의 주권만 말하면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문제지만, 마치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가 성도에게는 더 큰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세상에 통달했거나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부족함과 실수에도, 심지어 그러한 것들조차 사용하셔서 역사를 운영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어두운 시대를 향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다. 분열과 다툼이 가득한 사회 속에서 교회가 화평을 일구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창세기 요셉 이야기에서 놀라운 화해의 현장을 목격한다. 자신을 해치고자 하고, 결국 애굽에 종으로 팔아넘긴 형제들을 향해 요셉은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요셉이 형제들과 이룬 화해는 휴머니즘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요셉의 고상한 인격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음에 눈을 뜨게 됐다. 그렇게 돌아보니 자신은 억울하게 팔려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의한 생명 구원을 위해 보냄 받은 것이었다. 그때 요셉은 자신을 해하려 한 형제들까지도 구원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은 입술로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삶의 모습과 태도에서 그 고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너그러움과 포용력이야말로,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세상에 성도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신앙의 표현일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신실하게 고백하는 성도와 교회를 통해, 다시금 우리 사회에 치유와 회복이 임하길 소원한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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