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70대 장로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더니 불같이 화를 냈다. “나도 보수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자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박 전 대통령이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8일에는 직접 유튜브에 출연해 “못다 한 꿈을 저의 고향이자 유 후보의 고향인 이곳 대구에서 유 후보가 대신 이뤄줄 것으로 믿고 있다”며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말처럼 ‘국민이 선거권력으로 준 대통령 자리도 못 지킨 사람’이다.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돼 정권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주고 징역 22년형을 받았다가 특별사면됐다. 자숙하고 있어도 부족할 판에 정치 행보라니 염치가 없다.
박 전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전남지사에,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하는 강용석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꿈을 이루겠다며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쫓겨난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불나비들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석고대죄해야 할 이들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들 수 있는가.
이번 20대 대선은 여야 후보 간 득표 차가 0.73% 포인트다. 턱걸이 승리로, 절반의 민심은 당선된 권력에 우호적이지 않다. 대선 승리에 도취돼 김칫국 마실 때가 아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이 자신들의 공인 양 청구서를 내미는 모양새는 볼썽사납다.
일부 목회자도 대선 잔칫상에 숟가락을 얹으려 가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은 ‘한국교회가 당선인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와 사학법 재개정 등 후보 시절 약속을 상기시켰다. 무속 논란에도 한국교회들이 당선시켜줬으니 약속을 지키라는 말처럼 들린다. 당선인에게 ‘눈도장’ 찍기 위해서든 훈수를 두기 위해서든 신문 지면의 글을 통해 한마디 당부하고 싶어하는 교계 인사들도 줄을 지었다. 어느 기독방송사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감사예배’를 개최해 논란을 일으켰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인데 예배란 이름으로 사람을 높이는 데 대해 부끄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더구나 윤 당선인은 예수를 믿는 신자도 아니다.
광화문에서 정치 집회를 여는 극우 목사들만 문제가 아니다. 선거 때마다 1000만 기독인의 표를 얻기 위해 정치인들이 성경책을 끼고 교회를 찾는 행태가 반복되고 교회마저 좌우로 갈라져 싸운다. 일각에서는 교회를 찾는 이들을 막을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사들이 단호하게 선을 긋지 않다 보니 교회가 정치에 휘둘리고, 선거에 이용당하는 것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예배시간에 특정 후보를 일으켜 세워 박수 쳐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용당할 줄 알면서 정치인과 함께 사진 찍혀 페이스북에 올라가는 일도 피해야 한다. 비수 같은 험한 세상의 말을 해대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던 이들이 선거철 목회자를 찾아가 축복기도 받았다고 떠들어대는 모습은 반기독교적 정서를 부추길 뿐이다.
영락교회 2대 담임목사였던 박조준 목사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를 요청하자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설교시간에는 사회적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정권에 밉보여 외화밀반출 누명을 쓰고 옥고까지 치렀다.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교회의 교회 됨을 회복하라고 강조하며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게 악이다”고 했다.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우리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공생애와 교회의 공적 사명을 다시 생각해본다.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이 종교적으로 확신할 때만큼 완벽하고 즐겁게 악을 행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영적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권위이지만 그것을 남용하면 독재이고 비판받아 마땅한 행위에 불과하다. 기독교 지도자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다.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본보기를 보이는 자다(한기채 목사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할 한국교회 7가지 죄’). 세속화되고 정치화된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가 새겨들어야 할 준엄한 경구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