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봄과 가을이 없어졌다는 말을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봄과 가을이 너무 짧아졌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분명 기후가 변화한 탓일 겁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이 됐나 싶었는데 어느새 낮에는 기온이 올라 여름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렇게 짧은 봄이 지나면 곧 무더운 여름이 찾아올 것만 같습니다.
4월도 하순이 돼 갑니다. 윤사월(閏四月)을 아십니까. 사전적 의미는 “음력으로 사월에 든 윤달”이라는 뜻입니다. 본래 윤달은 음력을 양력에 맞추기 위해 넣는 달인데 3년에 한 번씩 돌아옵니다.
보통 5월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윤사월은 흔하지 않은데 지난해 윤사월이 있었습니다. 우리 문학에는 윤사월을 노래하거나 표현한 작품이 있습니다. 김동리 선생의 단편소설 ‘윤사월’과 청록파 시인의 한 명인 박목월의 ‘윤사월’이 있습니다.
박목월 시인의 ‘윤사월’은 1946년 문예지 ‘상아탑’ 5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전체 8행의 짧은 시이지만 흐드러진 늦봄의 정경을 서정적 정감으로 그려낸 멋진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는 이렇습니다.
“송홧(松花)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고/엿듣고 있다.”
시는 공감각적 심상으로 가득합니다. 이 시는 온통 노란색으로 시작됩니다. 송홧가루도 그렇고 황조(黃鳥)라고 불리던 꾀꼬리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처녀에게 봄의 색깔은 와닿지 않습니다. 오가는 사람도 없는 첩첩이 둘러선 그 어느 외딴 봉우리 아래, 외딴집에서 마치 갇힌 듯 사는 산지기의 눈먼 딸은 색을 분간하지 못하니 봄이 온 것을 알 수 없었겠죠.
그렇지만 꾀꼬리는 다른 방법으로 처녀에게 봄소식을 전했습니다. 꾀꼬리는 주로 낮에 우는데 해가 길어졌으니 우는 시간도 길어졌을 것입니다. 처녀는 이를 통해 해가 길어졌다는 걸 알았을 테고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겨우내 문틈으로 휘몰아치던 매서운 칼바람이 가고 따스한 봄의 향기와 함께 귀를 간지럽히는 꾀꼬리 소리를 들으며 처녀의 마음은 봄으로 스며듭니다. 처녀는 봄의 소리를 마음에 담아 두려는 듯 문설주에 귀를 가까이 댑니다.
자연은 송홧가루와 꾀꼬리, 따스한 바람을 보내 처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는 동안 처녀는 자신의 처지를 잊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 겁니다.
길었던 겨우내 우리 또한 외딴 봉우리 아래 외딴집에 사는 눈먼 처녀처럼 봄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슬픔을 이길 위로와 외로움을 이길 사랑, 아픔을 이길 치유, 죽음을 이길 생명의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4월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생명의 소식까지 들려주셨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어떨까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걸 앞두고 대한민국 전반에 새로운 정치가 가져올 소식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곧 들어설 새 정부는 물론이고 내각과 함께할 국회 등 정치와 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가 박목월 시인의 시에 등장했던 꾀꼬리가 됐으면 합니다.
이미 색깔로 보여줬다고 말하지 말고, 외딴 봉우리 아래 외딴집에 살던 눈먼 처녀처럼 알아볼 수 없는 국민을 위해 친절하게 소리로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내 아름다운 봄만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