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교회의 참된 터는’ 600장(통 24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6~18절
말씀 : 교회란 무엇인가 질문하다 보면 꼭 만나게 되는 두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이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이 정의는 고대 교회의 교부 어거스틴으로부터 시작됐고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교회론을 펼칩니다.
보이는 교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한다고 고백하는 세계 각처의 모든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칼뱅은 이 교회에 이름과 외형만 있고 그리스도는 없는 위선자도 많다 설명합니다. 특히 그는 당시 교황주의자들의 주장, 즉 보이는 교회(로마가톨릭) 안에 들어와야만 그리스도의 백성이고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사실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창조로부터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만 아시는 모든 본질적인 교회가 포함되는 매우 넓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학도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당시 재세례파는 서방교회의 모든 전통을 허물고 교회를 급진적으로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은 가시적인 모든 교회를 쭉정이로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칼뱅은 교회의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려는 시도를 위험한 것으로 봤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교회를 추구하며 보이지 않는 교회는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기에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겉사람과 속사람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과 영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16절)라는 말씀은 인간을 죽을 부분(육신)과 죽지 않을 부분(영혼)으로 나눠 대립시키는 게 아닙니다. 바울이 대립시키는 건 그냥 고난받고 죽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아 부활의 능력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삶입니다.
바울은 고난받는 현실에서 도피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18절) 영원한 영광(17절)이 주어진다는 걸 강조합니다. 이를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에 대입해 봅시다.
눈에 보이는 나는 불완전합니다. 가정이나 교회도 크고 작은 문제로 갈등이 있습니다. 이 현실을 완전히 부정하고 영혼의 평안만을 추구하는 걸 바울은 신앙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현실, 불안정한 공동체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짐으로써 보이지 않는 영광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식구만 아는 가정의 문제나 고난을 그대로 가지고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하며 나아간다면 이 작은 가정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와 맞닿아 있게 됩니다.
기도 : 하나님.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가정에 주님이 함께 계시면 무한하신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교회의 참된 터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하늘나라에 잇대어 살아가는 우리 가정과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민대홍 목사(파주 서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