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요즘은 잘 부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최근 분위기를 보면 과연 통일이 아직도 우리의 소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통일 논의가 명분과 실리 사이의 저울질 속에 실종돼 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맞이한 해방은 분단이란 원치 않은 동반 현상을 통해 이뤄졌다. 그 결과 동어반복인 셈이지만 우리나라는 분단됐기에 통일하려 하고, 통일되지 않으면 분단 상태로 남는 처지에 놓였다.
분단 상황 속에서 통일 논의는 여러 단계를 거쳐 왔다. 먼저 분단 직후에는 통일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용공으로 몰릴 만큼 위험한 금기 사항이 됐다. 그러다 1970년대 냉전 해빙기에 갑자기 뜬금없어 보이는 7·4남북공동성명이 나왔지만 그 뒤에 이뤄진 것이 통일을 향한 진전이 아니라 남북한의 독재체제 강화였기에 용두사미 격이 됐다. 80년대에는 통일운동이 다사다난한 가운데 진척됐지만 80년대 중반 국회의원이 ‘통일 국시’ 문제로 구속될 정도로 험로는 이어졌다. 90년대 이후 옛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권 붕괴 분위기 속에서 통일 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외적 변화에 비해 실질적 통일 논의는 오히려 답보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한 예로 최근엔 통일과 북한 관련 연구나 학계가 위축된 모습까지 보인다. 결국 아무 소용 없는 주문만 되뇌는 꼴이 아니냐는 자괴감마저 든다고나 할까.
이 자리에서 통일의 명분이나 실리, 이론이나 정책을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통일 논의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둘 두 가지만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통일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통일 관련 성명·선언 등의 문건에서 공통적으로 논의된 바는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인도주의와 민간 참여, 번영 등이다. 이런 가치 형성에는 정부와 기독교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평가도 있다. 여하튼 이런 가치들이 모두 한반도에 절실하고 푯대가 될 수 있다. 이런 핵심 가치를 염두에 둬야 통일 논의가 일관성 있게 지속될 수 있다.
둘째, 통일 논의가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문제라는 것을 보다 더 절감할 필요가 있다. 거시적으로 분단과 통일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 특히 부정적 영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분단과 통일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 않는 한 이런 영향은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급변하는 정세에 그때마다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수정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전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른 한편으로 실효성 있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통일 논의는 파편화, 단기화의 추세 속에서 오리무중이 돼 가고 있다.
미시적으로 분단과 통일이 국민에 미치는 영향, 특히 부정적 영향도 절대적이다. 3년 후면 분단된 지 벌써 80년이 되니 이제 곧 2세대를 넘어 3세대가 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분단이 일상화되고 익숙해지고 있다. 분단으로 인한 위기가 간헐적으로 일어나도 큰일이지만, 일상이 되면 더욱더 큰일인데도 막상 위기감이 줄어들고 있다. 물론 지속적 위기 속에서 위기감 축소 현상이 한 가지 생존 방식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분단 위기 노출은 결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 후손에게 대물림할 수는 없다. 도대체 하늘 아래 우리 국민 말고 어느 국민이 이런 극단적 위기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 산단 말인가. 통일 논의는 국가만이 해서도 안 되지만 국가 차원을 빼고도 할 수 없다. 국가도 국민도 통일이 아직도 우리의 소원인지 자문해야 한다.
안교성(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