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나 칼럼에 대한 독자들의 피드백을 자주 접한다. 따뜻한 응원의 글에 힘입어 하루를 유쾌하게 시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익명성 뒤에 숨은 무차별적인 광기를 대하며 섬뜩함을 느끼기도 한다. 20년 전쯤 코스닥시장 활황을 틈타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어느 한 회사의 주가조작 사건이 알려졌을 때다. 소액주주들이 회사에 며칠 동안 전화를 해대서 업무가 거의 마비될 정도였다. 왜 보도를 해서 주가를 떨어지게 했냐는 항의였다. 회사와 갈등을 빚는 노조가 그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항의 전화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얼마 전에는 차별금지법(차금법) 관련해 국회 앞에서 반대 집회를 한 기독교 단체의 문자폭탄을 받았다. 의도적으로 집회 참석인원을 축소 보도한 것 아니냐는 억측이었다. 차금법 반대 기사를 수십 차례 보도하면서 그 폐해를 알린 국민일보에 이럴 정도니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들이나 차금법 지지 칼럼을 쓰는 타 신문 필자들에게는 오죽하랴 싶었다. 그것도 목회자들마저 세상의 험한 말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면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밀어붙인 데 이어 차금법안 발의 15년 만에 첫 공청회를 열면서 입법을 강행하려 하자 찬반 양측은 단식농성과 집회, 문자폭탄으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어긋나고 다수 국민을 범법자로 만들 우려가 있는 차금법을 반대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은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선한 의도이고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폭력을 통해 쟁취한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로 내려간 뒤 평온하던 동네가 꽹과리와 스피커까지 동원한 집회로 시끄럽다고 한다. 집회 현장에는 욕설과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극우단체들과 유튜버들은 그가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부터 진을 치고 집회를 열었다. 심지어 어떤 단체는 문 전 대통령 집 앞과 평산마을회관 앞은 물론 지난달 15일 한 번 들렀던 냉면집과 양산시 전체 성당 10곳까지 13곳에 집회신고를 했다. 평산마을 집회로 지금까지 주민 55명이 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10여명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내란 음모나 수천억원 비자금을 축적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단체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증오와 분노의 배설일 뿐이다. 여기에 돈벌이에 혈안이 된 유튜버들이 가세해 마을 주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소위 문빠·대깨문·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저지른 고약한 짓에 비견할 바가 되지 못한다”(김기현 국민의힘 전 공동선거대책위원장)며 역지사지를 운운하는 건 갈등과 혐오를 부추길 뿐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예우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재임 기간 공과를 떠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라도 나서서 뜯어말려야 한다.
대선과 6·1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지지층만 믿고 폭주했던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엄중한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저는 이제 평범한 시민의 삶으로 돌아가 국민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며 성공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응원하겠다”고 했다. 촌부로 돌아간 그를 이제는 놓아줬으면 한다. 승자도 이젠 두 동강 난 민심을 하나로 봉합하고 패자를 품는 아량을 보일 때다.
진보·보수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지역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점점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다. 너그러움, 포용, 아량, 용서 등의 미덕은 사라져 가는 듯하다. 메마른 가슴에 증오, 적개심, 야욕이 이글거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덤벼드는 사생결단에 선혈이 낭자하다. 집회와 시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의를 전달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다. 그러나 익명성과 가면 뒤에 숨은 무자비한 욕설과 폭언은 위협적이고 공포스럽다. 표현의 자유가 상대방의 인격 살인이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고소·고발로 겁박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성경은 말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