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태후 (6) 필리핀에 단기 선교사로 참여… 세계 복음화에 한몫

1990년 8월 필리핀 만달리옹에서 ‘사영리’ 전도지로 현지 아이에게 복음을 전하는 송태후 장로.
 
송태후 장로가 만달리옹의 달동네에 사는 한 가정을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1980년은 우리나라와 민족에 큰 격동의 해였다. 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12·12 군사 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적으로 암울한 때였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은혜로 ‘80 세계복음화대성회’가 8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렸다.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00만명 이상의 성도들은 4박 5일로 진행된 집회에 모여 조국과 민족을 지켜 달라고 뜨겁게 기도했다. 조국의 비통한 현실을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하며 외치던 예레미야처럼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 김준곤 목사의 피를 토한 심정의 메시지는 100만 성도의 심령에서 통곡의 눈물을 쏟게 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나는 광장 바닥을 뒹굴며 ‘하나님이여! 조국과 민족을 지켜주소서’라며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당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많은 성도의 기도가 오늘 우리나라를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케 했다고 믿는다.

마지막 날 밤, 김 목사와 국제 CCC 총재 빌 브라이트 박사가 전한 세계선교에 대한 메시지와 선교의 도전은 10만명 이상의 성도가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단하고 일어서게 했다. 평생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 자비량 선교사로 나갈 사람, 1년에서 3년 정도 사업과 직장을 휴직하고 단기선교사로 나갈 사람, 자녀를 선교사로 키워 보낼 사람 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선교에 대한 도전으로 일어섰고 나도 그 대열에 참여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선교에 대한 기도의 지경이 넓어졌다. 이후 섬기던 교회에서 선교부장으로 10년 넘게 봉사하면서 동남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를 상대로 한 선교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다.

90년 8월 CCC에서는 학생들과 나사렛형제들을 중심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단기선교사 3000명을 파송했다. 나도 그 대열에 함께했다. 해외 진출이 처음인 나로서는 공항에서부터 생소한 환경과 문화, 언어 등을 접하게 될 큰 두려움을 안고 떠났다.

하지만 믿음으로 헌신한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짧은 기간임에도 학생들과 함께 영어로 된 ‘사영리’ 전도지를 들고 축호전도, 학교 방문 전도, 거리 전도를 할 수 있도록 이끄셨다. 내 영어 실력은 아주 짧았지만 전도할 때면 언어의 은사를 내려주신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도 경험했다. 우리나라 달동네 같은 언덕에 자리 잡은 한 가정을 전도하러 갔을 땐 여러 식구가 따뜻하게 우리 전도팀을 맞았다. 짧은 영어로 온갖 손짓을 곁들여가며 전도했음에도 그들은 복음에 반응했다. 나흘 동안 계속 그 집을 방문하며 양육 교육을 했다. 마지막 날에는 현장에서 전도한 자들을 초청해 전도 축제도 열었는데 80여명의 결신자들이 모인 대열에 우리 팀이 전도한 8명의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뻤다. 이날 모인 결신자들은 모두 현지 교회와 연결됐으며 현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감격의 눈물로 화답했다.

처음 경험한 해외 선교 사역이었지만 하나님이 맺어주신 결신자들로 인해 자신감을 얻게 됐다. 짧은 영어에도 복음을 듣는 현지인들을 보면서 전도는 언어보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임을 실감했다.(딤후 4:2)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