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송태후 (9) 최변방 외딴섬 발령… 친지들 “가거도가 웬 말이냐” 탄식

송태후 장로가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방파제 위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있다.


전남 완도와 목포에서 16년의 교육 선교사 사역을 마치고 순환 근무 원칙에 따라 1989년 3월 1일 신안군 흑산면 소흑산(가거도) 항리분교로 발령을 받았다. 주변 친지들은 ‘가거도 발령이 웬 말이냐’라며 탄식에 가까운 위로를 보내왔다. 최선을 다해 교사로 일했는데 대한민국 최변방이자 중국의 닭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는 가거도로 발령 낸 교육 당국과 하나님마저도 원망스러운 기도가 터져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 6학년에 다니는 두 자녀와 아내를 두고 방학 때나 만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했다. 사직할 것인가. 근무할 것인가 고민 끝에 일단 부임하기로 했다.

목포에서 출발해 흑산도에서 하루 자고 10시간의 항해 끝에 이틀에 걸쳐 가거도에 도착했다. 또다시 해발 640m의 험준한 산 능선을 한 시간가량 넘어 항리분교에 도착했다. 처량하고 암울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고 내 분신 같은 9명의 아이들을 사랑하며 교사로 헌신하기로 다시 다짐했다. 기능직 직원의 가정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소형발전기가 설치된 덕분에 전깃불을 밝힐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왜 이곳에 보내셨으며 할 일은 무엇인가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당시 나는 시력이 많이 약해지고 있었다.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환으로 시신경 50% 가까이 잠식되고 있어 시야가 매우 좁아졌지만 독서는 가능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교실을 책 읽는 방으로 꾸몄다. 독서교육에 중점을 두고 지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도 기독교 전문서적을 심취하라는 응답을 주셨다. 당시 나는 좋은 책이 큰 사람을 만든다는 비전으로 작은 기독교 서점을 운영했는데, 아내에게 서점에 있는 읽고 싶은 책 50여권을 화물선 편으로 보내 달라 부탁해 독서에 전념했다.

그해 6월 중순쯤이다. 주일이라 산 능선을 넘어 마을 교회에 예배하러 가는데 갑자기 바다 쪽에서 올라온 짙은 물안개가 온 섬을 순식간에 덮쳐버렸다. 한 치 앞을 걸을 수 없을 정도여서 길가의 돌에 걸터앉아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처음엔 두려움과 겁에 질려 소름까지 느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홀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통곡의 주일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나니 오후 1시가 됐다. 그 무렵 순식간에 짙은 물안개도 걷혔다.

섬 근무 4년 동안 400여권이 넘는 기독교 서적을 읽을 수 있었다. 동료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은 밤을 새워 독서에 심취한 내게 “고시 공부하러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밧모섬에 유배됐던 요한에게 요한 서신과 계시록을 쓰게 하셨던 하나님, 가거도를 포함한 외딴섬 4년의 근무는 다가올 미래를 위한 훈련 기간이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되리라는 욥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이다. 가족과 흩어졌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고,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자녀들을 잘 보살피고 양육하며 서점도 잘 관리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이때부터 집중했던 독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기독교 서적 분야에서 전문 권서인이 됐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