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전쟁 뉴스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전쟁 기념일을 맞는다. 역사가들의 한탄처럼 전쟁의 비보는 넘치나 평화의 희소식은 드물다. 사실 인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됐다. 한반도만 해도 한국전쟁 이전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만주사변,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특히 태평양전쟁 등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렸다. 그나마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70여년 동안 정전이라는 불안한 상태지만 제한된 평화를 누리고 있다.
한국전쟁을 회고할 때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사건 하나가 있다. 바로 세계교회협의회가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을 밝힌 ‘토론토 성명’이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을 돕기로 결의했다. 2주 후인 7월 초순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는 ‘한국 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는데 유엔의 ‘경찰 조치(police measure)’를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더불어 협상과 화해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세계 규모의 기독교 기구로서는 가장 먼저 한국을 지지한 셈이다. 여기서 ‘군사’가 아닌 ‘경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남침을 남북 간 38선 유지라는 세계질서를 파괴한 범법 행위로 봤고, 이에 대한 제재라는 의미에서 경찰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 성명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몇 가지 쟁점이 발생하는 계기가 됐다. 첫째, 종교학자 김흥수 교수에 의하면 당시 유일한 논쟁점은 과연 교회가 세계질서의 방어를 위해 무력 사용을 권고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성명은 만장일치로 채택됐지만 그중 무력 사용과 관련된 문장은 45대 2로 통과됐는데, 2명의 평화주의자가 반대 의견을 표했다. 이런 신학적 갈등은 비록 세계교회협의회가 한국전쟁이란 극단적 사태에 직면해 경찰 조치로서 무력 사용의 특단 조치를 인정했지만, 기독교 전쟁론에 있어 우선권은 전쟁이 아닌 평화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교회는 전쟁을 반대하고 방지하는 데 앞장서고 부득이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만, 어떤 경우든 전쟁을 부추겨서는 안 되고 궁극적으론 평화를 추구하는 게 본연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 성명은 무력 사용에 관한 논란에 그치지 않고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번졌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제1차 총회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세계교회협의회가 이 성명에서 유엔 결정을 지지한 것은 결국 반공주의 노선이라는 특정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취한 셈이고, 종교기구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이 논쟁은 결국 세계교회협의회 회장 중 1명인 중국 대표가 탈퇴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곧 세계교회협의회가 반공주의라는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세계교회협의회는 얼마 후 반공주의가 아닌 용공주의라는 정반대의 오해를 받게 됐다. 한국전쟁이 지속되자 서구 국가와 세계 교회는 휴전과 평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는 국내 정치 논리에 따라 전쟁을 통한 종전 즉 북진론을 고수했다. 북진론은 이미 국제전으로 번진 한국전쟁의 당사자가 된 국제사회의 입장과 달랐고, 한국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그런데 세계교회협의회가 전쟁 발발 직후 한국을 지지한 것은 물론이고 전쟁 구호 및 전후 복구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와 더불어 평화를 추구했다고 해서 용공주의라는 모함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악의적 주장은 오늘날까지 재생산되고 있다. 배은망덕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는 성탄절용만의 메시지가 아니다.
안교성(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