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1972년 제139차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회의에서 했던 강연 제목, ‘브라질에서의 한 나비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도 있는가’에서 유래했다.
로렌츠는 실험을 통해 기후의 변화가 아주 작은 변수에 의해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시 말하자면 아주 심각한 사건도 보잘것없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어느 시골 은행의 부도로부터 시작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인에게 저격당한 사건이 실마리가 되었다.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이 로렌츠의 나비효과는 과학이론에서 시작해 이제는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경영학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학문적 나비효과를 보이고 있다.
오늘 한국 사회와 교회의 총체적 난국과 부패와 혼란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만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 각자의 작은 허물과 욕심과 교만이 원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격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서 자신은 의의 사도인 것처럼 큰소리를 쳐서는 안 된다. 오늘의 암울한 사회의 모습과 답답한 교회의 현실 앞에서 소리를 죽이고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라고 스스로 회개의 날갯짓을 해야 한다.
다른 의미로 본다면 로렌츠의 나비효과 이론은 어떤 하나의 원인이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운명적으로 타고난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어떤 난국도 우리 각자의 조그만 반성과 노력으로 다시 엄청난 긍정의 결과를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 미국 심리학자 소냐 류보머스키의 이론을 종합하면 행복의 요건 중 50%를 차지하는 것은 유전적 요인이다. 그리고 10%의 요소, 즉 일정한 수입, 결혼, 종교, 건강한 민주 국가는 운명과 노력의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행복을 위한 나머지 40%는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로 얻어질 수 있다. 즉 행복의 절반은 운명, 절반은 노력이라는 주장이다.
모든 불행과 절망적 상황을 운명이요 팔자로 여기는 사람은 행복할 가능성이 0%이다. 한편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은 행복할 가능성이 50%이다. 이런 사람을 신념의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난관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념을 품고 노력하는 사회는 건강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신념조차 빼앗아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었다. 이제는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가 없다는 절망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신념이 없다는 말은 꿈이 없다는 의미이다. 꿈이 없는 백성은 이미 망한 백성이다. 이 사회가 빼앗아버린 꿈을 교회는 되찾아줄 수 있을까.
교회는 신념이 아닌 신앙을 가르쳐야 한다. 신념은 인간의 의지에 기초하지만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다. 교회가 할 일은 신념이 아닌 신앙에 근거한 긍정의 언어를 이 사회에 심어주는 것이다. 복음은 100%의 순도 높은 기쁜 소식이다. 이 복음의 언어를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 이 긍정의 언어가 믿는 자들의 입에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 희망의 언어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사회에 만연된 절망의 먹구름을 몰아내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밝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도록 해야 한다.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교회의 작은 날갯짓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날을 기대해 본다.
문성모(강남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