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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삶과 죽음의 경계



몇 년 전 병문안을 위해 찾았던 한 대형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 한쪽 벽에는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실낱같은 희망과 회한이 담긴 메모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메모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는 ‘사랑한다’ ‘미안하다’였다. ‘사랑하는 아이가 대학교 갈 때까지라도 살았으면’ ‘몇 달만 더 살아서 결혼식장에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가고 싶다’ 등 가슴 아픈 사연이 가득했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1분1초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를 깨닫게 된다. 두 다리로 힘차게 걸을 수 있고 쏟아지는 햇살을 오롯이 맞을 수 있는 것,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예기치 않은 병마로 몇 달째 투병 중인 선배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전해 듣는 소식들은 하루하루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야구를 좋아하던 선배는 한고비, 한고비를 넘기며 스마트폰으로 야구 경기를 보게 되고, 재활 치료를 하면서 몇 걸음 발자국을 뗀 것을 감사하고 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분인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실까. 인간의 머리나 세상의 과학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으로 믿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살고 싶어하는 그 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경제적 곤궁에 처해 열 살 난 초등생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조유나양 부모가 느꼈을 절망과 고통을 100% 가늠하지 못한다. 돈벌이가 끊기고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고 빚 독촉에 쫓기는 칠흑 같은 막막함을 짐작만 할 뿐이다. 헤어나오고 싶은데 자꾸만 발이 빠져 들어가는 심연에 갇힌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용기로 힘내어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더구나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이를 위한다고 자녀까지 죽음으로 함께 끌고 가는 것은 엄연한 살인 범죄다.

베이비박스와 생명의 소중함을 다룬 영화 ‘브로커’에선 서로 다른 상처와 아픔을 갖고 힘겹게 삶을 끌고 가는 이들에게 미혼모 소영(아이유 분)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한다. 꼬마 해진도 소영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하고 화답한다. 하찮은 인생은 없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다. 부모라고 자녀의 삶을 함부로 할 권리가 없다. 범인(凡人)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해결되는 것처럼 생명을 쉽게 저버린다. 물질을 숭배하고 물질의 노예로 살다 보니 일확천금을 꿈꾸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절망에 빠진다. 사회는 점점 각박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맘몬주의가 팽배한다. 한탕주의에 빠져 삶의 목표가 ‘돈’이 돼 버린 세상이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내가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는 부자였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부자로 죽는 것을 불명예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생전 기부를 많이 했다. 성경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한다. 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 22:1)고 했다.

물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다. 재물을 삶의 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가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다. 고난을 당할 때 보통의 인간은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침묵하고 눈을 감는가라고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욥, 까닭을 묻다’를 쓴 김기현 로고스교회 목사는 “고난 속에서 죽을 뻔했던 나, 남을 죽일 뻔했던 나를 생각하면 믿어지지 않아 얼떨떨하고 황홀하다”며 “고난은 은혜이고, 이전과 확연히 다른 새로운 나를 창조했으니 창조적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고난이 지나간 다음에서야 깨닫는다고 했다.

우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주인공 크리스천이나 욥처럼 믿음과 동행하며 고난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의 고단한 여정을 마무리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받을 상급의 소망을 품으며 살아가야 한다. 천상병 시인처럼 하늘로 돌아갈 꿈을 품고 인생을 소풍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면 고통의 무게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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