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삼 (9) 거제 경실련과 지역신문 창간… 시민 사회와 함께 성장

거제신문 창간에 앞서 제작한 창간소식지 1호 모습. 이종삼 목사는 초대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89년 대우조선은 노사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당시 김우중 회장이 거제에 1년 넘도록 상주하면서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노조원을 만났던 일이 유명하다. 하지만 그때 노조의 실상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이제 막 구성을 시작했던, 연약한 조직일 뿐이었다.

거제YMCA를 태동한 이후 기독교적 색채가 덜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설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대우조선에 대한 거제 시민 사회의 관심을 키우기 위한 접점으로도 경실련이 필요하다고 봤다. 지역사회와 함께 협력 하고 소통하는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실련은 서경석 목사께서 맡고 있었다. 거제 경실련 설립을 위해 나는 서 목사님을 만난 일도 있었다. 이미 거제YMCA 창립을 위해 뛰면서 지역 시민 사회 지도자들과 안면을 텄던 게 거제 경실련 설립에 큰 도움이 됐다.

나는 거제 경실련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아 섬겼다. 목사란 모름지기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일이다. 거제 경실련 창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설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많은 분의 노력이 모여 89년 드디어 거제 경실련이 창립됐다. 초대 대표는 강명득 변호사가 맡았고 나는 뒤로 물러났다.

거제 YMCA와 경실련 창립은 거제신문 창간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나와 뜻을 같이한 지역 시민 사회 운동가들은 하나같이 지역 신문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당시 우리나라 지역 신문으로는 홍성신문이 유일했다. 우리는 일단 홍성신문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준비위원들과 홍성신문도 방문해 창립 과정과 운영 노하우 등 신문사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거제의 어르신도 수시로 만나 신문 창간을 의논했다. 어르신들도 거제를 대표하는 지역 신문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셨다.

결국, 거제신문은 거제 경실련과 같은 해 빛을 봤다. 거제신문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생긴 지역 신문으로 당시 문공부의 등록을 마쳤다. 나는 초대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신문사가 자리 잡는데 작은 역할을 했다.

창간 직후이던 90년 1월 22일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3당 합당’이 벌어졌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주도했지만 거제 출신 정치인이던 김영삼 의원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지역 정치인이 참여한 일이었지만 거제신문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일로 창간하자마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지역사회에 든든하게 뿌리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거제신문의 성공적인 안착은 남해신문 창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해신문 창간의 실무를 맡았던 인물이 훗날 장관을 지낸 김두관 국회의원이다. 김 의원은 당시 이장으로 남해 지역 발전을 위해 큰일을 한 분이었다. 김 이장은 남해신문 창간을 위해 거제신문도 방문했었다. 홍성에서 시작한 지역 신문이 거제와 남해로 확산하면서 지역을 든든하게 세워갔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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