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토마스는 ‘내 몸 사용안내서’에서 “몸과 영혼을 함께 돌보려면 방해물 두 가지를 제거하라. 바로 탐욕과 나태다”라고 했다. 인정욕구(탐욕)와 게으름(나태)을 제거하라는 뜻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생각을 경계하고, 평소 120% 일해 왔다면 80%만 해보길 권한다. 이렇게 말하면 내담자들은 “어떻게 그래요? 원장님은 그렇게 하세요?”라고 되묻는다.
치료자인 나 역시도 인정욕구가 강해 남들보다 일찍 자리 잡았고 일중독으로 살았다. 서른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번아웃 때문이었다. 귀국 후 다시 의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외형은 비슷할 수 있겠지만 내 몸을 돌아보기 위해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다. 원칙의 요점은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는 데 있다. 수치상 딱 80%만 하라는 게 아니라 더 하고 싶어도 아니면 더 하기 싫어도 어느 선에서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렇게 안 하면 회사에서 일 못해요. 어떤 회사인데요”라고 말하는 분들의 공통점은 양극단에 있다. ‘모두 내 탓’을 하거나 ‘모두 남 탓’을 하는 경우, ‘너무 감정적’이거나 ‘너무 이성적(지식적)’인 경우 등 매사에 모 아니면 도로 극을 달린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진짜 내 모습으로 살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심리치료센터에서 가장 독보적인 심리치료는 바로 ‘자존감’ 프로그램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개인적으로 봤을 때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현재의 내가 형성됐을까? 좀 더 광범위하게 들여다본다면 한국 사회라는 문화 속에서 받은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국 사회는 가족 중심의 집단문화인 것 같으면서도 “Be yourself!”를 외치는 개인 중심의 주체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짜 내 모습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존감 프로그램을 개발했을 초창기에는 남들과 구별되는 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에 집중했었다. 한국 사회에서 피치 못할 눈치를 보지 말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점차 강조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Be yourself’는 꼭 남들과 다른 독창성만 강조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가족 내에서 나의 위치, 그동안 받았던 교육과 주어진 자원들, 관계 맺기에서의 내 성향 등 여러 면을 객관화시키는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나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받아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일이 많았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안 하면 누가 밥을 하고 손님을 맞이할 것인가. 분주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마리아도 일하라고 하세요.” 예수님은 뭐라고 답변했는가. “마리아는 자기가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 마리아는 스스로 좋은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다를 향한 위로도 잊지 않으셨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150% 쥐어 짜내는 분주한 마르다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선택한 마리아가 될 것인가? 어떤 길이든지 내가 선택한 일에 최대한 만족해 인생의 그림을 그려보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평생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지금의 이 시간들도 모두 소중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