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삼 (12) 노인 요양원 열자 진료 사각지대 어르신들 문전성시

이종삼 목사가 2003년 거제에 설립한 솔향노인요양원 전경.


거제에 처음 생긴 무료 양로원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어려운 점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어르신이 아플 때마다 너무 먼 곳의 병원까지 가야 했던 점이 고역이었다. 병원은 양로원에서 30㎞ 떨어진 하동에 있었다. 적지 않은 어르신들이 오가는 길에 멀미를 하셨다. 간단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다 더 큰 병을 얻을 것만 같았다. 내부에서는 요양원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요양원은 환자를 수용해 요양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 놓은 곳이다.

사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성이 필요했다. 2000년 가을, 당시 김동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님이 갈릴리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온 일이 있었다. 먼 곳까지 와준 김 총무가 감사해 서울에 간 김에 종로의 NCCK 사무실을 방문해 김 총무 방에 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이태복씨를 만났다. 셋이 앉아 사회 복지의 필요성에 관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씨가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이 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훗날 이 수석은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지냈다. 마침 요양원 설립을 검토하던 때라 이 수석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김 총무께 문의를 드렸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 목사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다만 요즘에는 아무리 청와대라고 해도 쉽게 요양원 설립 허가에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제에 요양원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 양로원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현황, 요양원이 필요한 이유 등을 담은 글을 써서 제게 보내 주시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썼고 곧바로 김 총무께 보낸 뒤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제시로부터 요양원을 신청하라는 연락이 왔다. 김 총무께 보낸 편지가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 총무도 이 일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하나님이 진심을 알아주셨다고만 생각했다.

우리 복지법인은 요양원 부지를 출연했고 정부로부터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지원받았다. 2003년 솔향노인요양원을 개원했다. 요양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 공간에서 어르신들을 다 돌볼 수 없어 양로원 뒤에 새로운 정원요양원을 또 세웠다.

복지 사업은 날로 확장했다. 재가 복지도 시작했다. 이는 시설복지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자택에서 지내면서 여러 서비스를 받는 복지 형태를 말한다. 나는 이를 두고 ‘어르신 유치원’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해서 만든 시설이 ‘목련 통합 재가 복지 센터’였다.

지금 돌아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든 사역이 진행된 것 같아도 순간순간 역경이 많았었다. 고비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는 건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간증 거리로 남아 있다. 모두 주님의 뜻이었다.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기도하며 사역을 이어오던 어느 날부터 병원을 세워야겠다는 소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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