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삼 (13) 280병상 규모 요양병원 건축… 대출 막혀 부도 위기

소나무 밭 둘레길로 둘러싸여 있는 경남 거제 굿뉴스요양병원 전경.


요양원을 세우고 나니 요양병원이 가까이 없다는 게 무척 아쉬웠다. 간단한 검진을 받으려 해도 30㎞ 떨어진 곳까지 가야 했다. 왕복 60㎞ 거리는 어르신들에게 큰 무리였다.

고심 끝에 요양병원을 세우기로 했다. 거제의 교회가 양로원과 요양원 세운 것도 벅찬데 요양병원이라니. 직원들까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요양병원은 요양원 옆 9917㎡(3000평) 넓이의 부지에 짓기로 했다. 연중 온화한 기후로 요양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거제도 서남쪽 해안가 언덕에 있는 부지에 서면 바다가 내려다보였고 뒤로는 계룡산이 있었다. 겨울에는 산이 찬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이 자리에 280병상 규모 요양병원을 짓기로 하고 건축회사와 첫 미팅을 했다. 하지만 교회가 건축비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완공되면 병원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르겠습니더. 거제에서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온 저희를 믿어주이소.”

간곡히 부탁했었다. 건축회사 관계자들도 고민했지만 이렇게 건축비를 내는 사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우리를 못 믿을 이유도 없었는지 승낙해 줬다. 요양병원 건립과 운영 등에 지식이 전혀 없다 보니 어려움이 컸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못 할 일도 없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건축이 거의 마무리 돼 갈 때쯤 진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시중 은행 어디에서도 우리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대출을 받지 않으면 건축비 잔금을 건넬 수 없었다. 부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사방이 막힌 벽에 갇힌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절망이 일상이 돼 버렸다. 숨도 겨우 쉬며 살던 어느 날 서울 종로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본부에서 노회장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열렸다. 2005년 경남노회장이던 내게도 초청장이 왔다.

대출이 해결이 안 돼 만사가 귀찮았지만 어쩐지 그 회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장에 앉았더니 바로 옆에 머리가 흰 어떤 장로님이 인사를 건네셨다. 서울 지역 한 노회 노회장이셨다. 회의를 마친 뒤에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대출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이 한 줄기 빛과 같은 말을 하셨다.

“장로님. 우리 교회 장로님 중에 OO은행 은행장이 계십니다. 제가 한번 말을 전해 볼게요. 분명 길이 있을 겁니다.”

감사하면서도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한편으로는 길이 활짝 열리길 기대하면서도 은행장 지시라고 막혔던 대출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생각만 많고 손에 쥔 건 없이 거제로 돌아왔다. 그 후 며칠이나 지났을까. OO은행 마산 지점장이 우리 교회를 찾아왔다. “행장님 소개로 왔습니다.” 나는 감격한 나머지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아무리 은행장 소개로 왔다 해도 지점장은 담보 물건의 가치와 복지법인 재산, 갈릴리교회의 상환 의지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 OO은행이 대출을 허가한 것이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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