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큰 죄에 빠진 나를’ 295장(통 41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가복음 5장 25~34절
말씀 : 오늘 말씀에 혈루증 앓는 여인이 등장하지요. 이 여인은 사건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와 그 딸을 고쳐 주려고 가는 판인데 갑자기 혈루증 앓는 여인이 등장했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등장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졌습니다. 회당장의 집으로 한시바삐 가야 되는데 발걸음이 지체되었습니다. 일이 잘 진행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헝클어져서 뒤죽박죽된 느낌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불청객입니다.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한테 와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게 되었을까요. 수많은 무리의 틈을 비집고 악착같이 밀고 들어왔겠지요. 오늘 말씀을 보면 27절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그랬습니다. ‘무리 가운데 끼어’에서 이 ‘끼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아무도 이 여인을 끼워 주지 않으니까 자기 혼자 억지로 끼어 들어갔습니다.
이 ‘끼어’라는 말이 헬라어 원어에 보면 그냥 ‘왔다(엘투사)’라고 되어 있어요. 마가복음은 그 여인이 그냥 ‘예수님한테 왔다’고 덤덤하게 써 놓았는데 번역하는 분이 여기에 ‘끼어’라는 말을 넣어서 실감 나게 번역했어요. 이것은 그 여인이 처한 형편과 사정을 너무나 잘 헤아려서 번역한 것이에요. ‘끼어’ 이 한 마디는 그야말로 최고의 번역입니다.
이렇게 끼워줘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을 끼워주면 다른 사람들이 툴툴대고 불평을 합니다. 예수님이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물으니까 제자들이 옆에 있다가 그럽니다. “아니 예수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시방 밀고 당기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옷 만진 사람을 찾으면 어떻게 해요. 예수님 옷 만진 사람이 한 둘입니까.” 이것은 노골적인 불만입니다. ‘왜 그런 사람을 끼워주려고 하느냐’ 이런 불만을 직접 말은 못 하니까 에둘러서 얘기하고 있는 거지요.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은 번번이 충돌을 빚는데 이 둘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는 사람들을 끼워주느냐 안 끼워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아무나 끼워주지 않았어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 이런 사람을 끼워줬어요. 반면에 율법을 잘 못 지키는 사람은 안 끼워줬어요. 세리들은 부정하다고 안 끼워줬어요.
예수님은 어때요. 이런 사람들을 다 끼워 줬어요. 율법을 못 지키면 안 지켜도 된다고 했고, 율법을 모르면 쉽게 비유를 들어서 잘 가르쳐 줬고, 한센병 환자한테도 손을 대고, 세리의 집에 들어가서 세리들하고 같이 겸상을 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었어요. 병든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여자들, 아이들, 이방인들, 세리들,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끼어든 사람들을 모두 품 안에 안아주었어요. 끼어든 사람들이 당당하게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나라입니다.
기도 : 하나님, 이 땅이 차별과 소외가 없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