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계절이 됐다. 코로나19로 움직일 수 없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반갑기 그지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올해는 ‘베케플레이션’(베케이션+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이 또다시 발목을 붙잡을 것 같다. 훌훌 털고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캉스’(홈캉스, 몰캉스, 북캉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속출한다. ‘휴가’라는 말이 설렘보다는 걱정과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일하는 것만큼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 편하게 쉼을 누릴 수 없는 현실은 우리 삶이 고단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성경은 쉼의 근원을 하나님에게로 연결시킨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되던 날 안식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곱째 날의 쉼으로 완성된다. 세상을 만드는 하나님의 일이 만듦을 통해서가 아니라 쉼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은 놀랍다. 쉼은 창조의 종착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4계명에서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한다. 창조의 완성인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함으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우리도 일하며, 하나님이 멈추실 때 우리도 멈춘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쉼은 우리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통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나 단지 안식일을 규범적으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쉼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어느새 멀어진 안식일과 쉼의 관계를 비판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율법 준수는 오히려 사람들을 쉴 수 없게 만들었고 안식일의 거룩함도 보장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며 진정한 쉼의 의미를 회복시킨다. 히브리어 ‘샤바트’(안식하다)가 단순히 ‘쉬다’를 넘어서 ‘멈추어서 돌아보다’는 의미이기에, 진정한 쉼은 일상을 멈추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할 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진정한 쉼은 우리 삶의 매 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을 나타내는 헬라어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다. 크로노스는 일상적이며 역사적인 시간인 반면, 카이로스는 역사 밖에서 역사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초월적 시간이기에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이해된다. 일상적인 시간에 개입하는 구원의 시간을 의미한다. 크로노스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카이로스의 순간은 우리를 언제나 새로운 세계로 이끌며, 진정한 쉼은 이때 이루어진다. 이 새로움이 우리를 많은 일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지금까지와 다른 사고를 하게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쉼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거나 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카이로스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 삶에 간섭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오신 하나님을 만난다.
휴가철이 됐다고 모든 사람이 휴가를 허락받는 것도 아니며 휴가를 얻은 모든 사람이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일에 묶여 쉼은 생각도 할 수 없는 고단한 사람들이 ‘떠나자!’고 비명 지르는 사람보다 더 많다. 육체적인 쉼이 절실한 사람도 있지만 정신적인 쉼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쉼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는 삶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어느 형편이든, 쉼의 진정한 의미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쉼(rest)이 있어야 나머지(rest) 삶이 회복되지 않겠는가. 휴가를 준비하는 들뜬 마음이나 휴가를 갈 수 없는 우울한 마음을 일단 멈추고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밋밋하고 힘겨운 크로노스의 순간에 어떻게 카이로스를 경험할 것인지,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휴가의 첫걸음이 아닐까 한다.
김호경 교수(서울장로회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