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섰는데 또다시 반대에 부딪히는 것만큼 힘 빠지는 일도 없다. 포로지에서 귀환해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재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이 딱 그랬다. 그들은 야심 차게 성전 재건에 나섰으나 주변 민족들의 방해로 공사를 멈춰야 했다. 그사이 20여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오랜 침체로 성전 재건에 대한 열망조차 사그라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했다.
그들의 말씀 사역을 통해 다시금 공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침묵을 깨고 시작된 성전 공사는 다시 커다란 반대에 부딪힌다. 유다 주변 지역 총독과 관료들이 성전 공사를 막기 위해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다리오에게 상소문을 올린 것이다. 그들은 성전 공사의 실태를 조사하고 왕의 뜻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유다 백성들은 왕에게 회신이 오기까지 공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이들에게 두 번째 좌절이 찾아왔다.
이 공사의 운명은 다리오에 손에 달린 것처럼 보였다. 유다 백성들에게는 피 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상소를 접수한 다리오는 조서를 내려 왕실의 문서 창고를 모두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이전에 메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악메다 궁성에서 한 문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고레스 왕 원년에 내려졌던 예루살렘 성전 재건 명령 조서였다. 그 조서에는 재건할 예루살렘 성전의 수치와 양식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탈취한 성전 기물들의 반환과 성전 공사 비용의 부담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돼 있었다. 그 조서가 고스란히 문서 창고에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고레스의 문서를 발견한 다리오 왕은 상소를 올린 총독과 관료들에게 조서를 내린다. 다리오는 선왕의 명령을 그대로 이어받는 것을 넘어, 앞으로 그 누구도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방해하지 말 것을 지시한다. 성전 공사 비용을 세금에서 지급할 것과 제사를 위해 필요한 제물들까지도 공급할 것을 지시한다. 여기에 이 명령에 불복하는 자들에게 행할 보복 조항까지 포함했다.
이렇게 유다 백성들의 손을 떠났던 성전 공사 문제는 놀라운 반전이 되어 돌아왔다. 긴 기다림의 시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통치와 권세자들을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유다의 왕뿐 아니라 이방 왕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다스리신다. 그들의 사소한 결정 하나하나까지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처럼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지 않은 곳은 단 한 평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 있어 보이는 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큰 담력을 얻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위정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고자 하는 계략까지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유익으로 바꾸어내시는 반전의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밟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선으로 바꾸신다.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이야기에는 그러한 반전이 담겨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러한 반전 이야기의 절정이다.
반전은 반드시 기다림의 시간을 포함한다. 상소문이 올라가고 왕의 응답이 내려지기까지 애타는 기다림이 있었다. 유다 백성들에게 그 시간은 포기와 좌절의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반전을 준비하고 계시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세상의 구원을 향하여 열심을 가지고 시작하신 일을 마치고야 마시는 분이다. 거듭된 좌절 앞에 낙심하고 있다면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자. 지금 우리가 견뎌내고 있는 시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으로 끝날 것이다.
(삼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