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 받으려고 예수 믿는다.” 아주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복이 도대체 무엇이냐”를 물어보면 돈도 많이 벌고 건강도 누리고 높은 자리에 올라 성공도 하는 그런 복을 말씀하신다. 이 복을 받으려고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때 눈물 콧물 흘려가며 기도하신다. 좋다. 그리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복의 지경을 좀 더 넓혀보길 권해본다.

개신교의 시작을 알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의 말을 꺼내 본다. 루터의 말대로 하면 ‘신앙의 목표와 효과는 복됨(selig werden)에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복 받는 데 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루터가 그의 ‘대교리문답’(1529)에서 설명하고 가르치는 복은 앞서 말한 그런 현세적인 복과는 좀 차이가 난다.

“복이란 죄, 죽음, 악마로부터 풀려나 그리스도의 나라 가운데서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구절구절 끊어 읽고 그 뜻을 음미해 보길 권한다. 아주 많은 것이 여기에 담겨 있다. 죄, 죽음, 악마로부터 풀려남, 그리스도의 나라, 영원히 사는 것 등등. 이 말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말들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죄란 무엇인가. 루터의 말대로 하면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자기 욕망을 앉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라는 성경의 정신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목에 힘주고 교만을 떠는 게 죄다.

죽음은 무엇인가. 루터에게 죽음은 이중적인 의미다. 생물학적 죽음과 영적 죽음. 생물학적 죽음은 수명이 다하면 누구나 맞게 된다. 이와 달리 영적 죽음은 하나님 없이 이 땅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없이 산다’는 말도 풀어보자. 이 말은 간단히 말해 ‘하나님 섬김과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 정신으로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영적 죽음이다.

루터의 설명대로 하자면 믿음은 우리의 양심을 점점 더 예민하게 만드는데, 그래서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건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예민한 양심으로 “모든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모든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다(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십계명 1조 해설).

악마는 무엇인가. 루터에게 악마(마귀)는 흰 소복 입고 치렁치렁한 머리에 입에 빨간 고추장을 묻히고 나타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악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다. 악마를 쫓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네 귀에 가까이하라…말씀은 악마를 몰아내고 심지어 사냥한다.”(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99) 말씀은 악마를 사냥하는 최고의 무기이며 사냥법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약속한 새 하늘과 새 땅, 새 생명의 통치이다. 그분의 통치는 죽음 이후의 삶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생에서 시작된다. 죽음을 부활로 바꾸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믿는 자에겐 그리스도 예수가 손을 내밀고 잡아주신다. 그리고 이 약속은 신실하고 영원하다. 이것이 믿음 가운데 약속된 구원이며 영생이다.

정리해 보자. 복 받기 위해 신앙생활하라. 그러나 좀 더 지경을 넓혀 ‘죄, 죽음, 악마로부터 풀려나 그리스도의 나라 한가운데서 그분과 함께, 그리고 이웃과 함께 영원히 사시라.’ 지금 이 순간부터 그것이 복이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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