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예민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예민함의 척도는 소리인데, 소리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빠질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5배 높다고 한다. 이런 분들은 교감신경계가 극도로 긴장 상태에 있어 자율신경계 실조증이 오기 쉽다. 소리에 예민한 것은 어느 정도는 타고난 감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습됐다고도 볼 수 있는데, 뇌가 경계해야 할 위협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장소를 피하면 소리에 예민해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무섭거나 불쾌했던 기억을 남기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것인데, 뇌의 공포 중추인 편도체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새겨진다. 정신적으로는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신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자기 의지로 조절하려면 통제력의 중추인 앞쪽뇌(전두엽)가 강화돼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동안 불안과 우울을 이겨내기 위해 술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술은 GABA신경세포에 작용해 일시적으로 괴로움을 잊을 순 있지만 불면, 우울, 불안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막말하는 남자 상사 때문에 여러 차례 상처를 받고 직장을 계속 바꿨던 여성을 상담한 적이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심리상담으로 뇌의 편도체에서 이런 반응이 기억으로 새겨져 비슷한 상황에서 쉽게 흥분되고 예민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항우울제로 예민한 뇌를 다스리고,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상사와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 직장을 더 이상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됐다. 매번 엄마와 싸우고 막말했던 아들 사례도 있다.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면서 어디 가서 사회생활을 잘할까 하는 자기 부정으로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다. 예민한 뇌를 가진 이 남성에게 내린 처방은 ‘엄마와 반드시 사이좋게 지낼 필요 없다’는 조언이었다. 그는 2년 동안 연락하지 않고 서로의 시간을 가지다가 이번 기회에 다시 잘 지내게 됐다고 했다. 그동안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고 선생님의 조언으로 엄마에게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보게 됐다고 감사했다.
대부분 사람은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엄마한테 잘해라. 먼저 전화드려. 나중에 후회해”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엄마랑 안 맞는 거다. 그냥 각자 살아야지”라는 생각의 전환이 관계를 더 편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두기’는 냉랭하게 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알아차리는 동시에 엄마를 바꾸어보려고 애쓰지 말고 내 기대에서 벗어났다고 상처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예민함은 원래 그렇게 예민한 부모 밑에서 유전적으로 또는 학습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학교나 사회에서 마음의 상처를 겪으면서 반복 경험된다. 그런데 자신의 예민함을 탓하면 있는 그대로의 나, 즉 ‘나다움’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로마서 3장 24절에는 ‘하나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예민함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하는 크리스천 환자들에게 이 구절을 소개하곤 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상관없이, 내가 무엇을 잘하거나 좋은 상태여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 ‘네 상태 그대로 괜찮다’라고 하신 것이다. 연약한 감정과 생각, 원하지 않았던 힘든 상황과 상처가 당장 우리를 예민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상처를 쉽게 받고 삶이 힘들어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여기 있다. 너는 자연적, 도덕적, 법적으로 올바르다”라고 말해주신 것이다. 예민함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너무 예민하다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나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