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성도로부터 시계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ㄹ’ 자로 시작되는 명품시계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일주일에 2분 정도 늦게 가서 매주 시계를 맞춰야 했다. 필시 짝퉁이라고 생각해 함부로 대하고 아무 데나 팽개쳐 놓기도 했다. 몇 년 후 시계가 골골거리다 결국 멈춰 버리고 말았다.
시계 수리점을 찾아 사장님께 물었다. “이거 짝퉁이지요?” 그렇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버릴 셈이었다. 그런데 웬걸 사장님이 말한다. “이거 정품 ‘ㄹ’ 시계입니다. 차고 다닌 지 10년이 되셔서 분해 소제 한 번 하셔야겠습니다.” 시계의 가격을 말해 주셨는데, 그동안 함부로 굴린 시계에 진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진품 시계라면 어째서 시간이 맞지 않는 겁니까?” “원래 고가 수제품 시계는 조금씩 안 맞습니다.” 30만원을 주고 분해 청소한 후, 소중하게 보관하고 시계를 찬 손으로 자랑스럽게 땀을 닦는다. 매주 시간을 맞추는 것도 더는 귀찮지 않다.
시계의 생명은 시간이 잘 맞아야 하는 것이다. 10만 원 주고 산 전자시계는 일 년 가야 1초도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맞지도 않는 시계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비싸서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니까?
아니 내 말은 애초에 그 시계가 왜 비싸고, 왜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느냐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진품이기 때문이다. 진품에서는 광채가 뿜어 나오고 향기가 풍긴다.
사람도 진품이 있다. 거짓과 가식이 없는 진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남에게 보이는 사회적 자아와 혼자 있을 때의 자신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사람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와 입으로 나오는 말이 일치한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으면 안 된다.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입장을 바꾸거나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간사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그렇게 살지 못하면 자신에게 오래 실망하는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내면 세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영(靈)을 심어주셨다. 진정한 자아, 속사람, 주체, 양심, 영혼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등을 매일 묻고 대답하는 것이다. 매일의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 말씀 한 조각을 자료로, 내면의 자아와 대화하는 것이다.
내면의 자아와 대화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다. 첫째는 외부적 환경이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는 대한민국을 거짓이 판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정치를 정치공학으로 바꾸고, 법을 기술로, 정론(正論)을 기관지(紙)로, 팩트를 입장으로, 거짓말을 ‘대안적 사실’로 바꾸었다. 유튜브와 SNS의 피상적 주장을 듣다 보면 정신만 사납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시간과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다. 가장 큰 거짓말은 그 세계가 전부이니 거기에 목숨을 걸라는 말이다.
둘째, 내면의 세계는 더욱 복잡하다. 자아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마음을 흐트러 뜨리는 소소한 염려들의 숲을 지나고, 격렬한 분노의 강을 건너고, 무심함과 무력감의 사막을 지나야 한다. 곧 늪을 만나게 되는데, 거기는 억압된 아픔과 상처 그리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거짓 자아가 숨어 있다.
난관을 헤치고 도달한 자아의 광활한 땅, 하나님의 영과 만나는 곳, 모든 힘과 지혜와 진실성의 출발지다. 매일 이 땅을 밟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에게서는 광채가 뿜어 나오고 향기가 풍긴다.
장동민(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