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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 목사의 신앙으로 세상 읽기] 잘난 척하지 않기



한 온라인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 1254명을 대상으로 ‘직장에서 이런 사람은 100% 왕따’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조사 결과 1위는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친구 중에도 ‘잘난 척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라는 게 1위였고 이런 대답도 있었다. “못난 친구가 잘난 체할 땐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잘난 친구가 잘난 체할 때는 정말 꼴 보기 싫다.” 왜 이런 현상들이 있는 것일까. 잘난 체하고 혼자 튀려고 애를 쓸수록 주변 사람들은 그의 실수를 은근히 바란다. 사람들은 잘난 체하거나 완벽한 사람보다 겸손하거나 다소 허점을 보이는 사람을 훨씬 좋아한다.

왜 세상은 기독교인을 싫어할까. 크리스천에게는 뿌리 깊이 깃들여 있는 ‘선민의식’이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사람을 세상의 죄인과 교회의 의인으로 나누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선민의식이 우리 스스로 고립된 섬에 가두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교회를 향해 잘난 것도 없이 잘난 척하는 그런 존재들이라고 낙인 찍었다. 선민의식의 가장 큰 문제는 ‘은혜’의 부재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더 이상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은혜의 부재로 인해 ‘겸손’이 사라진다. 하나님 앞에서도 잘난 척하고 겸손하지 못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올 구석이 없다. 은혜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교회처럼 삭막한 곳이 있을까. 잠언 3장 34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예수님과 공생애 3년을 지나는 동안 그렇게 잘난 척 많이 하던 베드로는 신앙으로 성숙해진 다음에 이런 편지를 썼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이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은혜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단점을 감싸 안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약함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신앙인들이 세상에서 사랑 받는 비결은 참 쉽다. 말씀대로 살면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허물 드러내는 것을 그렇게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장 큰 렌터카 회사인 ‘Hertz’(허츠)가 시장을 거의 독점하던 시대에, 그다음 주자였던 ‘AVIS’(에이비스)는 이런 카피를 내보냈다. “We are Number 2! So We Try Harder!”(우리는 2등이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이 광고는 위력을 발휘했다. 먼저는 1위를 달리고 있던 허츠의 경계심을 풀었고, 소비자들은 이들의 솔직함에 공감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

우리가 조금만 지혜롭다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아간다면,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잘난 척’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겸손하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지혜가 생기고 자신을 ‘낮게’ 여기는 삶을 산다. 이를 신앙적 용어로 ‘은혜로 산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허물을 보는 눈이 커지면 사물을 보는 눈이 작아진다. 남의 허물을 찾으려는 안간힘은 나의 허물을 감추려는 안간힘일 뿐이다. 남의 허물을 잡았다고 해서 상대방이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허물을 잡는 과정에서 내가 패배적 삶을 살게 될 뿐이다. 반면 남의 허물을 덮어준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면 그의 승리를 보면서 내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잘난 척하지 말자!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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