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신군부의 광주 학살 보도 금지와 검열에 맞서 해직된 언론인이 900여명에 달한다. 그해 11월에는 대대적인 언론 통폐합이 이뤄졌고 300명 이상의 언론인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가판신문이 나오기 전 청와대에 지면대장을 보내 빨간줄로 검열을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권력의 나팔수가 되기를 거부하고 진실을 좇는 기자들의 결기가 있었기에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었다.
40년도 더 지난 옛날 얘기를 새삼 꺼낸 것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론직필’을 신조로 삼았던 선배 언론인들에게 미안함이 있어서다. 요즘 미디어 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신문이나 방송은 난파선 신세다. 입법, 사법, 행정부와 함께 4부로 불리는 언론이 살아 있는 권력을 얼마나 견제하고 있을까. 정치 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감시는 과거보다 더 날카로워졌다고 자부한다. 소수 언론이 독점하던 정보를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 복잡다단한 정보화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넓게, 더 깊게 공유하고 있는 덕분일 거다. 그러나 자본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더 커졌다. 돈 앞에 무력하게 자존심을 팽개치는 언론사들의 일탈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코로나19 초기 방역 당국의 집합금지 명령을 어기고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주범 중 한 곳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다. 이만희 교주의 만행과 검찰의 늑장 압수수색을 비판하던 언론들이 요즘은 대대적으로 신천지 광고를 내보내며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한 중앙일간지는 신천지의 대대적인 헌혈 행사를 2개면 전면에 걸쳐 광고하는가 하면 또 다른 중앙일간지는 이 교주와 12개 지파장 사진까지 게재하며 교리를 홍보해 주고 있다. 심지어 지방 언론사들은 신천지 헌혈 행사 등을 미담 기사로 써주고 있다.
음지에서 활동하던 신천지는 코로나 확산을 계기로 정통 교회들이 주춤한 사이 양지로 나오면서 신도 수 확보에 노골적이다. 교회 목회자 사무실까지 찾아가 전도지를 돌릴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 교회가 ‘신천지 아웃(OUT)’이라고 써놓고 신천지 신도들의 교회 출입을 막고 있지만 신천지는 독버섯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10년 이상 출석한 교회 중직자 중에서 신천지 신도가 뒤늦게 발각되기도 한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은혜로교회도 주요 일간지와 경제신문에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는 지난 23일 “‘타작마당’을 내세워 신도를 감금, 폭행한 것으로 악명 높은 은혜로교회 설립자 신옥주 목사가 특수폭행죄 등으로 투옥된 이후 2020년 5월부터 지금까지 200건에 이르는 전면 광고를 일간지에 실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간지들은 ‘이제 온 천하는 잠잠하라-하나님의 법으로 온 세상의 거짓을 판결한다’는 은혜로교회의 시리즈 광고를 매주 싣고 있다. 중앙일간지 전면 광고 한 건이 6000만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은혜로교회가 신문 광고에 쓴 돈은 100억원 이상일 것으로 뉴스타파는 추산했다.
교주 신옥주씨는 신도들에 대한 폭행, 특수폭행, 감금, 특수감금 등을 저지른 혐의로 2018년 구속 기소돼 2020년 2월 대법원에서 7년형을 확정받고 수감 중이다. 은혜로교회가 신문 광고를 시작한 것은 신씨의 ‘재심 청원’ 시점이다. 은혜로교회는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가 지상낙원이라며 신도 400명가량을 집단 이주시켜 50여개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다. 은혜로교회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에 낸 “이제 온 천하는 잠잠하라” 시리즈 광고를 묶어 같은 제목의 책도 펴냈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기쁜소식선교회 역시 중앙일간지와 지역 언론에 광고는 물론 교주 인터뷰까지 하며 포교를 하고 있다. 기쁜소식선교회는 이단 구원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경은 종말이 가까울수록 거짓을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3~4) 돈벌이에 급급해 정통 교회를 욕보이는 이단들을 옹호하는 언론의 이중 행태에 참담함을 느낀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