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국창 (16) 꿈에도 그리던 공장 짓고 원가 절감에 승부 걸어

강국창 장로가 2016년 3월 한 경제 채널의 ‘CEO자서전’ 코너에 출연한 장면.


동국전자를 시작한 1980년대 초반, 한국 경제는 올림픽을 앞두고 한창 산업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반걸음 뒤로 물러서서 업계를 조망했다. 잘되는 기업은 왜 잘되는지, 부품 개발 업체가 보유한 기술은 무엇인지 등을 들여다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원천기술은 비슷한데 아직 개발이 활발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들 생산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후발 주자다. 후발 주자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가격이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지 원가를 줄여 마진을 남겨야 한다.’ 이미 치고 나가는 업체들이 많아진 상태에서 살아남는 길은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 뿐이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동국전자를 시작할 때의 비전은 소박했다. 예전의 영광을 회복할 수는 없으니 그때의 10%만 달성하자는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새출발했을 때 또 한번 고마운 인연과 연결되는 일이 생겼다. 하루는 인천 공장을 가는 길에 서울 신림동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강 사장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둘러보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가리봉동에서 공장을 할 때 우리 회사가 거래하던 은행의 대리였다. 당시 나는 은행 지점장과 직접 만나 거래를 했기 때문에 대리였던 그와는 인사만 하고 지내는 정도였는데, 나를 알아봐주니 고맙고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날 만남으로 동국전자의 공장이 세워지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 어느덧 은행 지점장이 된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일어서 보려고 하는 젊은 기업인을 돕고 싶어했다. 그는 땅만 확보하면 공장 건축 재정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 여기며 부지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산 중턱에 부지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

가보니 공장을 지을 만한 300여평의 부지가 있었다. 여기에 꿈에도 그리던 공장을 지었다. 지하 1층 지상 5층의 공장 건물이 우뚝 서게 됐다. 정말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이뤄진 결과물이었다. 마음이 벅차 준공예배 때 목이 메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본격적인 사업이 이어지면서 원가절감의 노력은 이어졌다. 우리가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은 품질은 높이고 원가를 줄이는 길 밖에 없었다. 그 시절 나의 집은 공장 한구석이었다. 한쪽 귀퉁이에 의자 몇 개를 붙여놓고 모포 한장 덮고 자면 그곳이 방이었다. 자세가 불편해 뒤척이다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어 다시 기계 앞으로 가서 연구를 이어가곤 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공장에서 지내던 어느 날 드디어 첫번째 열매를 맺었다. “사장님 됐어요. 제품 생산원가가 5% 줄었어요. 오히려 품질은 더 나아진것 같아요. 5%면 얼마나 큰 금액입니까. 1년에 주문받는 생산량의 5%면…와!”

우리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거래처가 늘어갔다. 소리없는 총성이 오가는 기업 현장에서 경쟁사들의 견제도 심했다. 하지만 어차피 실력으로 승부하는 만큼 누가 더 혼을 쏟아 부으며 일하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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