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났다. 언제부터인가 설날·추석 명절보다 설날·추석 연휴라는 말이 더 회자된다. 명절과 관련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추석 표현 중 널리 알려진 것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이다. 그런데 과연 이 표현이 계속 사용될 수 있을지. 요즘 추석 관련 기사들을 읽다 보면 명절이 기쁜 때가 아니라 오히려 우울하고 슬픈 때라는 느낌이 든다. 물가 상승, 임금 체불, 고부 갈등, 부부 갈등, 노소 갈등, 부모 형제 갈등, 그리고 패륜 등에 관한 기사가 넘쳐난다. 왜, 언제부터 추석이 이토록 괴롭고 피하고 싶은 때가 됐을까.
물론 추석은 한물간 퇴물이 아니라 여전히 위세가 당당하다. 그러나 변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최근 명절맞이 양상의 대세는 연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쉼의 시간이다. 쉬는 방법도 ‘방콕’ ‘호캉스’나 여행 등으로 다양한데 이런 맥락에서 인터넷 제사 등 신종 제사 방법이 등장하고, 제사에 대한 무관심이 확산된 것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이에 따라 명절 전통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전통 종교인 유교 측에서 다양한 간소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우리의 사고가 행동을 규정한다면 반대로 행동도 사고를 형성한다. 최근 추석과 관련된 한국인의 행동과 사고의 변화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추석의 우리말은 ‘한가위’다. 이에 관한 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게 한가위를 ‘크다’는 의미의 ‘한’과 ‘가운데’라는 의미를 가진 ‘가위’의 합성어로 보는 입장이다. 1990년 한·몽골 외교 관계 수립 이후 양국 간 역사·문화 연구가 진척되면서 한가위에 관해 가능성 있는 설 하나가 제기된 바 있다. 몽골의 주(한국의 도) 가운데 ‘항가이’란 명칭을 지닌 곳이 있는데 그 의미가 바로 ‘풍요’다. 여기서 한가위의 어원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고, 다만 한가위가 풍요의 계절인데 마침 발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걸맞은 단어가 하나 있다는 정도만 소개하자.
여하튼 한가위는 풍요를 상징하는 명절이다. 이 풍요는 농업, 목축업 등에서 비롯된 소산의 결과였다. 다시 말해 추석은 전통사회의 명절로, 생활 축제인 동시에 종교 축제가 됐다. 전통사회 특히 농업사회의 근간은 땅과 노동이다. 전통사회의 토대는 가부장적 대가족제이고, 재산 형성은 땅의 상속이 기본이며, 소득은 근로소득이 주였다. 따라서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족 관계는 생활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사회가 달라졌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상속에서 개인 생업으로, 근로소득에서 금융소득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심지어 한국은 땅이 근로소득 아닌 금융소득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가장 중심적 가족 관계는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 큰 의미가 없고, 그런 배경에서 나온 명절도 마찬가지 처지다.
그러나 인간에게 명절을 포함한 축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새로운 명절, 새로운 명절맞이가 필요하다. 이미 사회 특히 경제구조가 달라졌다. 또한 압축 성장하느라 전근대, 근대, 포스트모던이 뒤엉킨 한국 사회도 포스트모던시대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제 명절을 새로운 가족 사랑의 기회로, 기다려지는 축제의 계절로 만들 필요가 있다. 먼저 그것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가려내야 한다. 탈(脫)명절우울증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명절 기쁨도 잃게 된다.
유독 전통문화에 대한 긍정적 대안 제시에 역부족이었던 개신교가 분발해야 할 분야다. 사실 개신교 가족의 명절 의식이나 문제도 다른 이와 대동소이하다. 명절 때 스트레스를 더 받는 여성과 젊은이를 위한 변화부터 시도하자. 가령 젊은이에게 ‘취업, 결혼, 자녀’ 등 명절 대화 삼대 금기 주제부터 입단속하자. 곧 또 다른 명절 설날이 다가온다. 모두가 기뻐야 명절이다.
안교성(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