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7) 내 몸은 오래된 건축물… 지금은 닦고 조이며 보수 중

딸 동주와 함께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항암치료 중이라 머리를 밀고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이 어린 소년 같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열이 올라 생사를 오갈 때 딸 동주가 내 귀에 속삭였다.

“엄마, 병 치료하고 얼른 일어나 여행 가자.” 그 말에 힘이 났다. “그래 우리 딸하고 여행 가야지….”

아픈 중에도 하나님께 어서 병이 나아 여행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여러 번 기도했다. 내게 여행은 영감을 주고 활기를 준다. 특히 글이 안 써질 땐 여행이 최고다. 여행을 가면 새벽에 샛별처럼 떠오르는 글을 한없이 쓰기도 한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벧후 1:19)

여행을 다녀오면 피곤하고 많이 아팠다. 이제 여행을 못 가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지만 매번 고통을 이겨냈고, 함께 여행하자는 딸과의 약속을 조금씩 지키고 있다.

코로나19가 조금 잠잠해져 여행 규제가 완화됐을 때 2박 3일 짧게 태국을 다녀왔다. 동남아시아 여행은 처음이었다. 수도 방콕은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친근했고 따뜻한 기후가 마냥 좋았다. 화려한 네온사인, 싱그러운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라고 느꼈다. 기억에 남는 곳은 조용한 골목에 있는 짐 톰슨의 집이었다. 그는 태국의 실크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집 건축 양식과 실내 디자인에 반해 두 번이나 그곳을 방문했다. 열대 나무가 포옹하듯 감싸고 있는 붉은 집. 그 안엔 짐 톰슨이 동남아 각지를 돌며 수집한 귀한 예술품들이 놓여 있었다. 화려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갖춘 매력에 푹 빠졌다. 얼마나 신나게 둘러봤는지 잠시 아픈 것도 잊었다. 그 집을 보면서 자신의 취향으로 가꾼 공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이런 집에 살고 싶었다.

아프기 몇 달 전, 집을 짓기 위해 땅을 다지고 있었다. 친한 친구와 ‘집 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집을 포함해 스틸 집과 우드 집, 그린 집, 글라스 집 등 콘셉트가 있는 멋진 집, 적어도 10채 짓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보기만 해도 치유와 힐링이 되는 집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건축 이야기는 조금 더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병원에 다니고 몸을 고치느라 잠시 지체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건축에서 손을 놓은 건 아니다.

나는 지금 내 몸을 건축하고 있다. 몸도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건축물이라고 해도 비바람을 맞고 세월이 지나면 상하기 마련이다.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듯 나 또한 보수해야 할 시기가 온 것뿐이리라. 새롭게 칠하고 닦고 조이면서 다시 쓸 만하게 만들며 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은 세우고 쌓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건축이다. 건강과 신뢰, 사랑, 믿음, 신앙 등. 어느 것 하나 세우고 쌓지 않는 일이 없다.

오늘도 건축으로 하루를 보낸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몸을 세우고, 기도하며 신앙을 쌓는다. 몸이 나으면 내가 살 집을 지을 예정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쉬고 싶은 ‘풀밭 같은’ 집, 그런 집을 지어야겠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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