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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초점은 하나님의 불꽃



가을이 깊어간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가 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감도 제법 붉게 물들었다. 아름다운 이 계절 자연은 한결같지만, 인간들이 부대끼며 사는 세상은 소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역사는 공감의 확대 과정이라지만 무정함과 잔혹함 또한 늘어나고 있다. 종교는 가리산지리산 갈지자 행보를 하는 역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그 본령을 잃어버리고 자폐적 담론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리멸렬이다. 옛 질서를 지탱하던 신성한 가치 혹은 존재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벌거벗은 욕망뿐이다. 횔덜린이 말한 궁핍한 시대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각 교단의 총회가 열렸다. 팬데믹 혹은 팬데믹 이후 시대를 성찰하고 우리 문명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마당이기를 바랐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교단들의 결정은 꿩 잡는 게 매라는 실용주의가 정의와 공의의 원리를 압도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거라는 외침은 경청되지 않았다. 세상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교단을 이끌어갈 수장들이 선출되었다. 그들은 이 난마처럼 얽힌 교계의 현실을 풀어갈 적임자가 자기라고 믿고 있다. 그 믿음은 장하지만 실제로는 위험하다. 부푼 자아는 오만할 뿐만 아니라 타자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는 “위대한 일은 없다. 오직 작은 일들만 있을 뿐이다. 그걸 위대한 사랑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성실함과 신실함이다.

수피교의 스승인 아부 알리 알 리바티와 압둘라 알 라지가 사막 길에 동행이 되기로 했다. 압둘라가 “당신이나 나 가운데 한 사람은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말하자 아부 알리는 얼른 “당신이 리더가 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압둘라가 “그렇다면 당신은 내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자 아부는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압둘라는 말없이 가방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넣은 뒤 그것을 등에 걸머졌다. 아부 알리가 “그 짐을 내게 달라”고 말하자 압둘라는 “내가 리더이니 당신은 내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날 밤 그들은 사막에서 세찬 비를 만났다. 압둘라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아부 알리의 머리맡에 서서 입고 있던 자기 옷을 벗어 비를 막아주었다. 아침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난 아부 알리는 자초지종을 알고는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당신이 리더가 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기 전에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참으로 위대한 영혼은 자기를 높이지 않는다. 자기 분수를 정확히 알고 거기 맞게 처신하는 것이 지혜다. 예수 정신을 온전히 체현하려고 노력하던 이들의 모임인 브루더호프 공동체도 한때 리더십의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내홍을 겪은 끝에 구성원들은 원로인 하이너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때 하이너는 병에 걸려 기신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그는 새로운 리더는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군중이 이른바 위대한 지도자를 따랐던 경험을 통해 사람을 따른다는 것이 빚어내는 나쁜 결과들을 보았습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히틀러를 가리킨다. 하이너는 공동체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위대한 인물처럼 보지 말아야 한다며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불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종교 지도자로 함량 미달일 때가 많다. 성경의 인물들은 당신의 일을 함께하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자기는 부족하여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기를 신뢰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사람들의 앞자리에 세워진 이들에게서 타오르는 하나님의 불꽃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불꽃이 타올라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을까.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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