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13) 폭우에 천장에서 물 ‘뚝뚝’… 할 수 있는 건 오직 기도

방송인 서정희씨는 늘 긍정적으로 기도한다. 저서 ‘혼자 사니 좋다’를 출판하고 미소 짓는 서씨 모습.


태풍 ‘힌남노’ 뉴스로 마음이 아프다. 순조롭게 지나가길 기도했다. 폭우가 오피스텔 천장을 뚫고 뚝뚝 떨어졌다. 손잡이가 달린 양동이를 받쳐 놓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건물 방제실에도 전화하지 않았다. 벽에서 곰팡내가 올라왔다.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생활이 익숙하다.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오는 비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기도밖에는. 통을 비우고 다시 놓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리듬을 느낄 뿐이다. 눈을 감고 다시 설친 잠을 청한다.

아침까지는 양동이가 넘치지 않을 것이다. 새벽이 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변이 5분 간격으로 나왔는데, 피가 섞인 소변이다. 배가 애 나을 때처럼 뒤틀리고 통증이 심각했다. 식은땀이 났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겨우 나온 소변이 시뻘건 피라니….

10번 정도 혈뇨를 눴다. 마음이 착잡했다.

‘병원에 씻고라도 가야지. 집에 못 오면 병실에서 쓸 물건도 챙겨야지’

꾸역꾸역 보따리를 챙겨 병원 응급실로 갔다.

항암 치료의 연속이다. 몸이 무기력해질 때가 많다. 절제한 가슴은 가끔 꼬집어 보지만 별반 느낌이 없다. 그래도 놀라지 않는다. 마음이 편하다. 어지간한 일엔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많이 달라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만약 변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내심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다. 진실로 변하고 싶다면 자신이 부족한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부족을 진즉에 인정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누구에게든 배우려 했다. 믿음과 신앙은 믿음의 선배에게 배우고, 유방암 치료 과정은 이를 겪은 환우와 그 가족들에게 배운다. 배운 걸 따라 해 본다. 예전에 살림할 때 장난처럼 읊조린 “나는 따라쟁이야”라고 말하던 것이 긍정적으로 발휘되고 있다.

“오늘 오줌에 피가 나왔지만, 면역이 약해 어딘가 조금 염증이 생긴 걸 거야.”

가족을 또 놀라게 할 순 없었다. 미리 말할 것을 혼자 중얼거렸다. 매일 재촉하던 나만의 시스템은 없어진 지 오래다.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몸이 반응하는 대로 오늘도 그렇게 할 참이다. 응급실이 낯설지 않다. 들어오면 맘대로 나갈 수도 없다. 또 검사가 시작됐다.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 적어도 두세 번은 주삿바늘을 찔러야 한다. 주삿바늘을 여러 번 찌르며 미안해하는 간호사를 위로하곤 한다.

“제가 원래 혈관이 잘 안 보여요. 괜찮아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금식 선포다. 예정된 순서다. 휴대전화에 글이나 써야겠다. 가발 안 쓴 머리카락 없는 사진을 보면서 기다리는 응급실이 내 집 같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 9:29)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