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15) 말수 없던 어린 시절, 집에서 인형 옷 만드는 재미에 쏙

방송인 서정희 씨가 새벽기도 후 집 식탁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말수가 적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천성인지 깨끗하고 예쁜 게 좋았다. 밖에 나가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있는 게 좋았다. 여자아이들이 많이 하는, 그 흔한 고무줄놀이도 방에서 했다.

두 동생이 고무줄을 양쪽에서 잡으면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을 힘차게 밟곤 했다. 공기놀이도 집에서 했고 뭐든 방에서 했다. 다들 나가고 나면 집에 혼자 앉아 인형 옷을 그렸다.

인형 옷 그리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다.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면 문방구로 달려가 예쁜 인형 놀이를 샀다. 그 안에 있는 옷으로도 부족해 도화지에 옷을 그렸다. 물방울 무늬 드레스가 생각난다. 나비나 별, 스마일 등도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정성스레 색칠했다.

차곡차곡 종이 드레스를 담아 상자 안에 모아 놨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갔다. 가끔 동네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멋진 공주님 종이 드레스를 보여주면 “와~ 대단해. 나도 드레스 하나만 줘.” 좋아하는 친구에겐 큰맘 먹고 하나 주기도 했다. 우쭐해지는 순간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쓰고 그리는 버릇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그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가만히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글쓰기를 하면 마음이 평안하다. 어릴 때 예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은 것 같다. 자라면서 귀여움도 많이 받았다. 체구는 얼마나 작던지 버스 요금을 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살 때, 비가 엄청나게 내리며 물난리가 났다. 동물들이 떠다니고, 바가지 등 집안 물건들이 둥둥 물 위로 올라왔다. 부러워하던 아랫동네 부잣집들이 물에 잠겼다. 하지만 지대 높은 곳에 살던 가난한 우리 집은 멀쩡했다.

물난리가 난 동네를 배경으로 엄마가 흑백사진을 찍어 주었다. 며칠 전, 그 사진이 담긴 사진첩을 찾으려 했지만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찾지 못했다. 그 사진이 아른거린다.

월세와 전세, 수도 없이 살림을 옮기다 보니 앨범을 분실했다. 여하튼 초등학교 2학년 짜리가 퇴근길에 엄마 등에 업혀 집으로 가곤 했으니, 아마 그때 엄마도 나도 내가 작은 걸 행복하다고 느낀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난, 서울 한남동 지대 높은 옛날 우리 집을 생각한다. 물난리가 나도 무너지지 않았던 지대 높은 그 집이 그립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7)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부르던 노래가 기억난다.

“모래 위에 집을 짓지 말아요/해변 가까운 곳에도/비록 보긴 좋지만/이내 무너지고 말아/또다시 지어야만 돼/반석 위에 우리 집 지어요/주님 영원한 반석이 되시네/비바람 불어와도 주님 지켜주셔요”라는 내용의 복음성가이다.

성경 말씀처럼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게 높고 높은 곳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겠다. 무너질 모래 위 내 인생을 짓지 않겠다. 영원히 살 나의 본향 거룩한 집, 반석 위에 내 집을 지을 것이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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