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16) 상처로 남은 유년시절 아버지의 죽음… 신앙으로 극복

방송인 서정희는 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사진은 해수욕장에서 찍은 ‘몸짱’ 아버지 서영배씨와 머리를 두갈래로 귀엽게 묶은 어린 시절의 서정희(왼쪽).


고모는 동네에서 영화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라고 불렸다. 친척들이 내가 고모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작은 체형으로 얼굴도 작고, 예민한 성격까지 고모를 닮았다.

반면 외가 쪽은 키가 장대 같이 컸다. 털털하고 통 큰 외가와 비슷한 점이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아버지 친가 쪽을 많이 닮은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엄마와 외가 쪽을 닮아 가는 듯하다. 아픈 중에도 먹성이 좋고 털털해지는 것, 그다지 예민하지 않는 것 등. 외가 친척들처럼 넉넉한 아줌마가 되고 있다.

사실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진한 눈썹과 쌍꺼풀, 두툼한 입술, 외국인 같았던 아버지. 레코드사에 다니던 친척 덕에 우리 집에는 없는 살림에도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 제법 많았다. 축음기며 릴 테이프, 도넛판 같은 것들. 지금은 골동품 가게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미닫이 찬장처럼 생긴 전축문을 열고 음악을 틀던 아버지와 그 앞에서 춤을 추던 내가 어렴풋이 기억 난다.

레코드판에서 흘러 나오는 일본 노래나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노래를 종알종알 따라 불렀다. 그러면 아버지는 귀엽다고 흐뭇하게 쳐다보셨다. 달려가 안기면 아버지의 가슴 근육이 날 밀어냈다. 반동으로 튀어 나올 것 같은, 지금 표현으로 아버지는 ‘몸짱’이셨다.

팔뚝에 매달려 빙빙 돌려 줄 때면 어지러웠다. 깔깔대며 웃다 이불바닥에 던져지고. 어지럽다고 손가락으로 빙빙 도는 흉내를 내는 나를 쳐다보던 아버지. 그게 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다.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31세 젊은 나이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정신적 결핍으로 다가왔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내 삶을 지배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 땐 참 어색한 하나님 아버지였다.

그래서일까. 어떻게든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불안감이나 두려움, 외로움을 물려주기 싫었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고 버텼던 나의 결혼생활. 지금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알기 때문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짧은 기억이지만, 좋은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지나온 상처가 지금의 나를 견고하게 지켜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상처가 남긴 흉터가 오히려 훈장이 돼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를 돌보셨다.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른, 작은 꼬마를 기억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출 2:25)

“사랑한다 정희야. 사랑한다 정희야.” 오늘도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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