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17) 엄마 대신 살림하느라 힘든 할머니께 더럽다며 잔소리

방송인 서정희는 밥상과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다. 사진은 서씨가 차린 아침 밥상.


“애들아~. 얼른 밥상 들고 들어가. 밥 다 됐어.”

중학생 언니와 초등학생 남동생이 부엌에서 외할머니가 차린 밥상을 들고 오면 나는 반찬 그릇과 찌개 냄비를 이리저리 바꿔 놓곤 했다. 노란 양은 냄비에 보글보글 김치찌개가 끓고 작은 그릇에 소박한 반찬이 담겨 있는 밥상. 할머니는 그것들을 그냥 손 담는 대로 무심히 ‘툭툭’ 올려놨다.

나는 그게 거슬렸다. 찌개를 가운데 놓고 그 주변으로 동그랗게 반찬을 놓으면 보기 좋을 텐데….

‘냄비 받침은 왜 이렇게 밉지? 큰 걸 쓰지 말고 좀 작은 걸로 안 보이게 하지. 개인 그릇으로 하나씩 주면 좋을 텐데. 찌개를 덜지 않고 같이 퍼먹는 건 정말 싫어….’

이런 생각을 말하면, 할머니는 소리를 ‘꽥’ 질렀다.

“염~병하네. 잘 먹지도 않는 게 반찬 투정은 무슨…. 얼른 밥이나 먹어.”

할머니가 나를 별로 예뻐하지 않은 것은 밥을 안 먹어서가 아니었다. 노쇠한 몸으로 엄마를 대신해 손주들 돌보기도 힘든데 “예쁘게 해라” “깨끗하게 하라”고 잔소리하는 내가 할머니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도 했다.

할머니가 만든 김치찌개 맛은 정말 환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할머니가 간을 보느라 입으로 쭉 빤 숟가락을 찌개에 넣었다 뺐다 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싫었다. 그게 싫어 밥 먹기가 싫었다.

“할머니, 그러지 마. 더러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끼니때 마다 밥 차리기도 힘드셨을 텐데 끙끙거리며 부엌을 오가시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가끔 할머니의 깡 마른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아이고 시원해라.”

야무진 고사리손이 이리저리 꾹꾹 누르며 “할머니 시원해”라고 물으면 “그럼~그럼”이라고 말씀하셨다. 유일하게 귀염받는 시간이었다.

어젯밤,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베갯잇과 시트를 다 적셨다. 다시 자다 너무 더워 일어났다. 항암치료 중 수시로 일어나는 증세이다. 네댓 번 화장실을 가려 일어났다. 반복해 일어나니 피곤이 누적됐다. 천근만근한 몸 상태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천성대로 방을 깨끗이 청소하며 몸을 추스르는 중이다.

온몸이 쑤시니 할머니처럼 ‘끙끙’ 소리가 절로 나온다. 허벅지부터 엉덩이까지 주먹으로 ‘퉁퉁’ 두드린다. 어릴 적 내가 할머니를 주물러 드린 것 같이 누가 나를 시원하게 주물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주를 부를까. 아냐 지금 곤히 잘 텐데….” 진통제를 먹고 참기로 했다. 세월을 어찌 이길 수 있을까. 나도 만만치 않은 나이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머리카락 없는 날 보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이런저런 할머니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할머니를 생각하듯 주님이 날 생각해주길 기대한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창 19:29) 라헬을 생각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창 30:22) 나도 하나님을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벧전 2:19)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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