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인애하신 구세주여’ 279장(통 33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1장 20~22절
말씀 : 예수님 당시 큰 도시는 가버나움과 고라신, 벳세다였습니다. 이 도시들은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셨기에 예수님이 기대했던 도시들입니다. 특히 벳세다는 그 유명한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났던 들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세다야 너희가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며 책망하십니다. 안타깝게도 고라신이라는 도시는 예수님이 그 많은 사역 가운데서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저주하시는 도시의 이름으로만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회개였습니다. 개인적인 몇몇 사람의 회개가 아닌 공동체적인 회개를 기대하셨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수많은 치유 사건과 벳세다에서의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장정만 5000명이었기에 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2만명이 넘는 숫자입니다. 이 정도면 도시 전체가 회개하고 변화되고도 남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있어야 할 믿음의 스토리가 그 도시들에는 없었습니다.
도시에는 믿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 해도 말씀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도시는 예수님의 저주만 받을 뿐입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친절하신 예수님이 오죽 답답하시면 도시 전체를 저주하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그토록 목놓아 심판을 외친 이유는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버나움과 벳세다와 고라신을 향한 혹독한 저주는 구원과 회복을 간절히 원하시는 예수님의 애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왜 이 세 도시는 말씀과 기적 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을까요. 수많은 기적의 실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에만 집중하고 자신의 필요만을 채우길 원했기에 정작 본질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을 통해 영원을 담아두고 싶었지만 무리는 육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특히 오병이어 사건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통해 불쌍한 백성들이 결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하려 했던 사역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괴물처럼 무섭게 달려들었을 뿐입니다.(요 6:15)
우리도 수없이 많은 은혜를 받고 기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본심을 헤아려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가버나움 벳세다 고라신같이 믿음의 스토리가 전혀 없는 인생은 아닐까요. 우리의 지난날을 되돌아봅시다.
기도 : 예수님, 우리가 수많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회개하게 하소서. 더욱 주님의 마음을 알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조순미 인천 올리브나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