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19) 가난 벗어나려 아메리칸 드림 꿈꾸다 길거리 캐스팅

가수 혜은이 언니랑 연락하고 신앙생활을 함께한다. 사진은 ‘혜은이 콘서트’때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혜은이와 서정희(오른쪽).


나는 연예인을 꿈꾸지 않았다. 아니 꿈꾸지 못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꿈꾸는 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건만…. 가난한 우리 집 살림에 사치라고 생각했다.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마음 한구석에 대학생활에 대한 동경이 컸다.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엄마가 혼자 벌어 살림 꾸리기도 벅찼다. 가족의 정이나 사랑을 나눌 시간도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하루 빨리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었다. 희망은 미국에 사는 이모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계획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기다리던 이모에게 초청장이 왔다. 겨울방학 동안 우리 가족은 이민을 떠날 준비를 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타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 영어 잡지 정기구독 신청을 했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백화점 아르바이트도 했다.

힘든 줄을 몰랐다. 그저 미국 이민으로 들뜬 소녀였다. 가을 즈음, 영어학원을 가는 데 누가 다가왔다. 유명 사진작가였다. 그는 “모델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소위 ‘길거리 캐스팅’이 됐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사진작가 덕분에 모델의 길로 들어섰다. 하루아침에 광고를 찍게 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거울 앞에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연예인 흉내를 내는 걸 가족에게 들키기도 했다.

특히 가수 혜은이를 좋아해 돈을 모아 친구와 리사이틀 구경을 간 일도 있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언니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모르실꺼야’ ‘당신만을 사랑해’ ‘감수광’ ‘후회’ 등 노래를 부르는 흑백 텔레비전 속 혜은이 언니의 손짓 표정을 거울을 보며 따라했다.

연예인이 됐을 때 혜은이 언니를 직접 만났다. 너무 떨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언니와 안부전화를 한곤 한다. 언니도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우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느낀다. 믿음 안에서 서로 중보기도를 해 준다.

얼마 전 서울 대학로에서 ‘혜은이 콘서트’를 했다. 나는 언니에게 찬조 출연을 하겠다고 했다. 언니는 아무 때나 무대에 서라고 했다. 혼자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다.

정미조의 ‘개여울’,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두 곡을 준비했다. 어설프게 타악기 카혼을 배웠다. 퍼커션(percussion)이다. 퍼커션은 드럼, 심벌즈, 캐스터네츠, 쉐이크, 카혼 같은 타악기를 두드리는 것을 말한다. 노래 중간에 쉐이크 연주를 했다.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앉아 부를 때는 다리 사이에 카혼 대신 작은 드럼을 두들겼다. 마치 내가 가수가 된 듯 기분이 좋았다.

요즘도 가끔 딸 동주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또 거울 앞에 서있다.

“무엇을 입고 찍지?” 예쁜 드레스를 또 꺼내본다. “아유~. 우리 엄마는 못 말려.” 동주에게 한소리를 듣겠지만 말이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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