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서정희 (23) 자전적 수필집 ‘정희’ 발간… 불편했던 세상과 소통 시작

이혼 후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자전적 에세이 ‘정희’를 발간했다. 사진은 ‘정희’ 책 속 서정희 모습.


이혼 후 엄마와 동네 목욕탕에 함께 다녔다. 아침 일찍 목욕탕 문이 열자마자 첫 손님이다. 목욕탕에 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싫었다. 이혼한 내가 왜 그렇게 한심하고 싫었는지….

몸을 거의 숨기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헛일이었다. 엄마 옆에 꼭 붙어 조용히 씻는데, 쳐다보는 사람이 하나둘 늘었다.

“서정희씨 맞죠?”

“네.”

시선을 피했다. 집으로 얼른 돌아왔다. 목욕탕 일이 자꾸 떠올랐다. ‘이러지 말자. 세상에 나가자. 나는 죄인이 아니다. 이혼은 죄가 아니다.’고 다짐하고 다음 날부터 인사를 하기로 했다. 거리를 걷다가, 물건을 사다가, 목욕탕에서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서정희예요.” 이렇게 말이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주머니들이 냉커피와 요구르트를 사주시고 사과와 귤을 주셨다.

아주머니들은 누룽지를 갖고 와 “집에 가서 끓여 먹고 살 좀 쪄요”라며 걱정과 격려를 많이 해주고 안아주었다. 가슴이 찡했다. 그렇게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었다. 많이 편안해졌다는 증거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다시 찾아내 나 자신을 칭찬해주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일기를 포함해 오래전부터 써왔던 글들이다.

‘그래 책을 내자.’

글을 써 놓은 공책은 이삿짐 보관소에 있었다. 새벽기도에 다녀오면 은혜받은 성경 말씀과 기도를 교회 식구와 지인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낸 것들이다. 글을 수집하고 또 글을 추리고 다듬었다. 반년 넘게 작업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을 때 용기를 냈다.

여러 출판사에 전화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미국 작가 마가렛 미첼의 용기를 떠올렸다. 미첼은 여러 번 출판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나도 용기를 냈다. 만약 원고를 받아주지 않는다 해도 나만의 기록을 하나씩 더해 가자고 생각했다. 준비된 자만이 주님이 쓰시겠다 하실 때 쓸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마 21:3)

그것만으로도 나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리자 심장이 쿵쾅대고 식은땀이 흘렀다. 용기를 내야 했다. 내 안에 성령이 위로했고, 단단한 믿음이 버틸 수 있게 해줬다.

“주님, 도와주세요.” 기도하며 전화를 계속했다.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데 땀이 ‘뚝뚝’ 떨어졌다. 원고를 보내고 답변이 올 때까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니 피가 말랐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날들이었다.

21세기북스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겠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처 자전적 에세이 ‘정희’를 출간했다. 이혼 후 희망을 놓지 않고 용기를 낸 나 자신이 대견했다. 출판사가 고마웠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다.

정리=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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