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만종에서 배우는 감사



그림 중 최고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晩鐘)’이라고 생각한다. 만종에는 다른 그림에는 볼 수 없는 ‘감사’라는 독특한 주제가 있다. 밀레의 만종이 가르쳐주는 감사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고개 숙인 감사이다. 저녁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고개 숙인 모습에서 감사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감사를 아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죄인 됨을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덜되고 못나고 무지하고 허물 많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성경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고개 숙인 죄인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만종의 그림처럼 우리가 하루에 얼마의 시간을 고개 숙인 채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

둘째로 말 없는 감사이다. 고개 숙인 채 입도 다문 채 조용한 침묵 속에서 감사가 표현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혹자는 그들을 본받으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들의 감사에는 인정이 없고 따뜻한 온기가 없다. 끈끈한 인간미가 없는 입에 붙은 감사이다. 감사는 말을 많이 하는 것과 비례하지 않는다.

언젠가 지적장애인 수용소에 가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예배 후 어떤 어린아이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먼지와 코가 묻은 사탕을 말없이 건네주었다. 그 아이가 내게 한 최고의 감사 표현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사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그때 그 아이가 말없이 건네준 사탕만큼 큰 감사의 표시를 받은 적이 없다.

셋째로 함께하는 감사이다. 만종에는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말 없이 고개 숙인 모습이 있다. 하나님과 이웃이 함께 있는 감사의 모습이 만종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감사 모습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은 감사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이웃과 함께하는 감사는 남의 불행을 내 감사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내가 출세하기 위해 남의 불행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감사가 깃들 곳이 없다. 내가 보이고 이웃이 보이고 민족이 보이고 세계가 보여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감사의 마음과 입술이 메마르지 않을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에는 수직적인 문화만 강조되고 있다. 즉 나와 하나님밖에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수평적인 생각, 즉 이웃이 보이고 그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신앙이 아쉽다. 불신자들은 교회의 몸집을 불리는 데 동원되는 수단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교회의 목적이 돼야 한다.

넷째로 고난 속에서의 감사이다. 만종이라는 그림의 배경은 가난한 부부의 감사하는 모습이다.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의 감사 모습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일부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만종은 원래의 그림에서 수정된 것이라고 한다. 즉 가난한 부부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는 본래 감자가 아니라 죽은 아기의 시체가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그림 속 부부의 모습은 슬픔이 아닌 감사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아이를 잃은 슬픔조차도 그들의 감사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다. 그 슬픔조차도 가슴에 묻고 두 손 모아 조용히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참 신앙인의 자세를 발견하게 된다.

만종의 하루해가 저물듯 올 한 해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고개 뻣뻣이 들고 알량한 명예와 지식을 자랑하며 살았고, 자기방어와 변명을 위한 입놀림과 자화자찬을 위해 쉴 새 없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이웃과 함께 살지 못하고 경쟁하고 편 가르고 싸우다가 흘려보낸 많은 시간을 회개해야 하겠다. 조용히, 고개 숙인 채, 이웃과 함께, 고난의 한가운데서 감사하고 있는 만종의 풍경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동경하며 삶의 현장에서 적용해보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

문성모(강남제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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