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초반부 유비가 서주성에서 조조에게 대패해 유비의 삼 형제는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 관우는 조조에게 생포될 상황에 빠지게 되는데, 조조의 장수인 장료는 죽기까지 싸우려는 관우를 설득하여 조조에게 투항하게 만든다. 관우는 유비의 두 부인의 안전 때문에 잠시 조조에게 투항했으나 유비의 생사를 확인하는 즉시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로 갈 것을 천명한다. 조조는 관우에게 적토마를 선물하고 금은보화와 산해진미를 주며 작위를 하사하면서까지 마음을 얻으려고 하지만 관우의 마음은 변함없이 유비만을 생각한다.
반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관우는 유비가 원소의 진영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관우는 조조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별 인사를 한다. 이때 조조가 마음만 먹으면 관우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관우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마음과 그의 충성심과 인물됨을 아깝게 여겨 그냥 가도록 허락한다. 이때 조조가 부하 장수들에게 남긴 명언이 있다. “비록 적(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언정 죽일 마음은 없다.”
조조는 황제 위에 군림하면서 천하통일을 위해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긴 하지만 삼국지를 통틀어 그만한 인물도 찾기 어렵다. 그는 소위 페어플레이를 할 줄 아는 영웅이었다. 페어플레이란 상대방을 인정하는 자세이다. 상대를 세워주고 인정하면서 정정당당하게 한 판 붙고자 하는 정신을 말한다.
한국교계에 페어플레이 정신이 없다. 내가 이기기 위해 상대를 전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아예 주저앉히고 죽여서 눈앞의 승리만을 쟁취하려는 소인배로 가득 차 있다. 조조만도 못한 사람들이 진흙탕에서 서로 뒹굴면서 싸우는 한국교회는 소인배들의 천국이다. 한국교계에서는 관우가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다. 영웅이 그리운 시대이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진 인물이 아쉬운 세상이다.
삼국지의 또 하나 명장면은 오나라의 주유가 죽었을 때 제갈량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문을 가는 대목이다. 사실 적벽대전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주유는 제갈량을 몇 번이고 죽이려고 했다. 그런 주유가 죽었다. 그것도 비참하게 패자로 전쟁터에서 사망했으니 속으로 박수를 칠 일이고, 그의 고약한 행동을 생각하면 시체를 발길질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제갈량은 주유의 관 앞에서 엎드려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천하의 영웅이신 장군이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가신단 말입니까. 여기 그대의 벗들이 다 있는데 장군만 없다니요. 제가 장군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달려오지 못하고 지체한 것은 밤을 새워 장군에게 걸맞은 제문을 쓰느라 늦은 것이니 부디 하늘에서 받아주십시오.”
그의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어찌도 처량했든지 오나라의 모든 문무 대신이 감동하고 함께 울었다고 한다. 그는 주유의 자리를 물려받은 노숙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섰고, 나오면서 오나라의 장수들에게 ‘우리의 공적은 조조’라고 강조하여 유비와 손권의 결속을 다졌다.
제갈량이 장례식장을 나와 배를 타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루터에 왔을 때 누군가가 등을 치며 귀에 속삭였다. “주유를 화병으로 죽게 만든 장본인이 조문을 오시오? 동오엔 인재가 없는 줄 아시오?” 제갈량이 속마음을 들켰구나 하고 깜짝 놀라 돌아보니 천하의 귀재 방통이었다. 제갈량은 조문을 통해 조조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최고의 책사 방통을 유비에게 선물하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창출했다. 이것이 정치이다. 한국교계에는 정치의 고수가 없다. 그것이 슬프다.
문성모(강남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