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이상 (18) 공장 큰불로 전소…“주님, 불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년 1월 전소된 풍년그린텍 김제 공장 모습.


2011년 11월은 유난히 바빴다. 풍년그린텍 김제 공장에서 일이 바쁘게 돌아가고 옆의 대지 3000평에 건물 1000평 되는 공장 하나를 경매로 낙찰받아 회사를 확장하는 시기였다. 언제나 분주함과 활기가 넘쳤다. 그해 설날엔 성과급도 100% 챙겨 주겠다고 직원들에게 약속한 터라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던 때였다. 그렇게 희망찬 꿈에 부풀어 2012년을 맞았다.

1월 2일 오전 6시 안산 공장으로 출근을 서둘렀다. 머릿속에는 시무식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양재나들목에서 과천 방향으로 우회전하는데 새벽부터 길이 꽉 막혀 있었다. 평소 새벽 시간엔 막힌 적 없는 구간이라 의아했다. 잠시 후 보게 된 건 대형 교통사고 현장이었다. 자동차 여러 대가 완파돼 엉켜 있었다.

‘저들 모두 새해 새 꿈을 갖고 길을 나섰을 텐데 어쩌다 이런 변을 당했을까.’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차 안에는 늘 그랬듯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라북도 김제시 오정동 계란판 공장 화재로 공장은 전소됐고 현재 잔불 정리 중입니다.” 잠시 멍했다. 우리 회사 풍년그린텍 김제 공장의 화재 소식이 분명했다.

안산 공장에 도착해 보니 공장은 가동 중이었고 관리 책임자들은 급히 연락을 받고 김제 공장으로 내려가 있었다. 직원들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나 역시 서둘러 김제로 향했다. 오전 10시, 아직도 공장 위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소방차 3대가 잔불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전라북도 내 소방차가 모두 출동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새해 벽두에 날아든 날벼락이었다. I빔으로 지은 1600평 규모의 건물은 엿가락처럼 휘어진 채 주저앉아 폐허가 돼 있었다. 하지만 처참했던 현장과 달리 마음은 의외로 차분해졌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하나씩 떠올랐다.

재산 손실은 100억원 정도로 추산됐다. 공장 부지 6000여평에 보이는 것이라곤 재뿐이었다. 모든 게 타버렸다. ‘내 능력이 부족하니 김제 공장은 포기하라는 하나님의 예시일까.’ 경매로 받은 옆 공장의 잔금과 기계 처분, 구조 변경 문제 등이 스쳐 지나갔다. 직원들 모두 막막하고 허탈한 표정이었다. 평소 공개적으론 회사에서 기도하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날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기도라는 생각뿐이었다.

회사 전 직원들을 모아 둥글게 둘러선 채 손을 잡았다. 기독교 신앙이 없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 한마음인 듯했다. 그러곤 큰 소리로 함께 기도했다. 직원들이 황당하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기도의 시작은 감사였다. “하나님, 저희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서 한번에 불태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회사를 인수해 기계를 고치면 양질의 제품을 생산할 줄 알았는데 예비하신 길이 아니었나 봅니다. 기계를 고치기보다 저희의 기술력으로 새 기계를 만들어 사용하는 게 더 나은 길임을 보여주신 것이라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모든 직원이 하나 되어 속히 복구해 어려움을 겪는 양계 농가를 도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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