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이상 (20) 베다니 예수마을 조성… 주님의 자녀로 깨어난 산족 주민

태국 치앙마이에 사는 산족 주민들을 위해 지어진 베다니교회 전경.


피터 강 부부는 한국에 있을 때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가정환경도, 교육 여건도 부족함 투성이었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끝에 1996년 당시 연 매출 500억원에 달하는 사업을 일궈냈다. 나와는 1980년대 말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청년지회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뒤 사랑을 흘려보내는 일에 동역자가 되면서 그 연이 더 끈끈해졌다.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눴던 그에게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호주에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가 어느 날 태국 산족을 섬기는 선교사가 됐다는 것이다. 그가 보낸 이메일에는 산족 선교를 하며 겪는 어려움과 기도제목이 담겨 있었다.

호주 이민 후 3남매를 양육해 낸 두 사람은 마지막 남은 사재를 털어 치앙마이에 대지 1만여평을 구입했다. 거기에 작은 마을을 만들어 산족들이 산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척박한 땅 위에 길을 내고 60평씩 땅을 나눠 60호가 살 수 있는 마을을 설계했다. 그곳에 산족들이 생활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기숙사와 교실을 건축했다.

피터 강의 사역을 좀 더 알아보고 싶어 아내와 함께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눈으로 확인한 현장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놀라웠다. 그는 내게 “CBMC 일을 하고 있으니 혹시 기념교회를 지어 줄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청했다.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땅이 잠들어 있을 때 헌신적인 서양 선교사님들이 우리를 잠에서 깨운 것처럼 그들도 잠에서 깨어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태국에서의 교회 건축이 시작됐다.

처음 짓게 된 교회 건물은 평소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교육이 이뤄져야 해서 200여명이 예배드릴 수 있을 만큼 제법 크게 지었다. 산속에는 학교가 없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었고 학교에 가려면 산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그들에겐 돈이 없었다. 선교사들은 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을 했다. 그런 아이들이 내려와 살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숙 시설도 하나 지었다. 그렇게 5개의 교회와 1개의 기숙사가 지어졌다.

마을 이름은 베다니 예수마을로 정했다. 교회는 베다니마을의 중심이었다. 베다니마을이 지금은 큰 동네가 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기가 부족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국가에서 전기 시설을 증설하지 않아 동네에서 가전제품을 쓸 수 없고 가끔 큰 집회를 하는데 전기가 없어 주민들이 은혜를 누릴 수 없었다. 그 소식을 접하곤 바로 ‘전기 배선 후원금’을 보냈다. 얼마 후 사진 한 장과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렇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성도들이 너무너무 기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달된 사진에는 환한 전등 아래서 마을 주민 모두가 활짝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베다니교회가 건축된 이후 치윗교회, 빠방마이교회, 빠마이댕교회, 위앙빠빠오교회, 베다니 드림홈 등이 차례로 지어졌다.

치앙마이에 갈 때마다 절로 힘이 난다. 그들이 희망을 찾아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찾아 열심히 살아가는 산족 교인들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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