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500장(통 25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전서 9장 19~23절
말씀 : 사도 바울은 19절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율법에서 자유한 사람이 되었지만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만나면 그들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눈높이를 맞추었습니다.
이미 율법에서 자유한 바울 입장에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율법 아래 얽매여서 그게 전부인 양 그리고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혈통만 자랑하며 예수님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볼 때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들의 예법과 관습을 존중하면서 겸손하게 다가갔습니다.
반대로 율법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없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 교회 안에 믿음이 약한 자들이 있으면 자신도 그렇게 믿음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종의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울이 각 사람의 처지와 형편에 맞게 그들에게 다가갔던 중요한 이유는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22절)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자리로 내려가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섬기는 종의 신분으로 다가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주요 선교 전략입니다. 바울이 당시 다니던 곳들은 문화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대할 때는 유대인의 정결법대로, 이방인들을 대할 때는 자유롭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초기 한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도 한국의 문화와 풍습에 맞춰 한복을 입고 상투를 틀고 다가왔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양보하지 않으면서 우리 문화와 풍습에 맞춰 겸손하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을 전도하기 위해 그들을 이해하고 마음을 헤아리며 공감하고 품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직장이나 이웃에서 만나는 불신자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과 같이 우리도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종의 자세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렇게 그들을 섬길 때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 가운데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얼마든지 자유롭지만 종이 될 수 있다고 고백한 사도바울처럼 오늘 하루, 있는 곳에서 사도바울처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율법에서 자유케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황성국 목사(목동늘푸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