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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의 묵상 일침] 주께 하듯이



‘성령 충만’이라는 말을 우리는 다소 신비하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 표현이 등장하는 에베소서의 맥락은 사뭇 다르다. 오히려 성령 충만의 결과는 자신들 앞에 주어진 여러 관계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경외할 것인가와 깊이 관련된다. 그래서 바울은 당시 사회에서 중요한 질서들로 여겨진 부부와 부모·자녀, 그리고 종과 주인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이 대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바울의 시대와 우리 시대가 다르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바울이 말하는 종과 주인의 관계는 없다. 이러한 차이점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우리 현실에 바로 대입시키는 건 곤란하다. 그러나 동시에 중요한 건 그리스도인들의 여러 관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바울의 권면에서 그 원리를 파악해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듯한 종과 주인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자. 바울은 종들을 향해 이 땅의 주인들에게 순종하는 것을 마치 그리스도께 하듯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사회에서 종들이 주인에게 굴복하는 건 굳이 이유가 필요 없는 일이었다. 주인은 무력을 행사하거나 겁박해 얼마든지 종들을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충성심을 가지고 주인을 섬기는 종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진정성을 가지고 주인을 섬기라고 말한다. 마음과 동기, 태도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생각과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종들은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모든 이의 진정한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야 겉치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땅의 주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알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마음까지도 보시고 그대로 갚아주시기 때문이다. 주인에 대한 존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주인을 의식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런 원리는 주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인들은 단지 이 땅에서만 한시적으로 주인 노릇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진정한 주인은 하늘에 계시고 그분은 사람의 중심을 지켜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인을 향해 자신의 종을 위협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걸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단순한 인간적 연민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진정한 주인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주인과 종이라는 질서는 없지만, 훨씬 더 복잡한 사회 속에 더 다양한 층위의 사람 사이의 높고 낮음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하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소명 의식이라는 것이 사라진 지 오래이기에 모든 것은 오직 경제 논리로만 설명된다. 일의 가치나 보람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권면에서 발견한 대로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겉이 아니라 마음과 태도를 살피신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 일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있는지, 혹은 내 이익 여하에 따라서만 행동하는지 보고 계신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마치 그분께 하듯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한다. 이 땅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 쉽게 무시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교회와 성도의 성숙도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들에 있지 않다. 만물의 유일하신 주님은 그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향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지금도 지켜보고 계신다.

송태근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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